기자가 죽을 곳은 현장
현장에 더 가까이 다가가라

>> 제주대신문 선배 기자를 만나다

김호천 35기 / 연합뉴스 제주지역 차장
김호천 35기 / 연합뉴스 제주지역 차장

▶제주대신문사 입사 동기는.

고등학교 때 인생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그때 진실을 알리는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기자 중에서도 사진기자를 선택한 이유는 글은 쓰는 자의 생각이나 의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방송부에 활동하면서 카메라를 잡기 시작했고, 학보사에 사진기자로 입사했다. 지방 일간지인 제민일보 사진기자를 거쳐 현재까지 연합뉴스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 특별히 기억 남는 기자 시절 일화는.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때라 시위 취재를 특히 많이 했다. 그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는 남북학생회담을 진행하기 위해 한라산과 백두산의 물과 흙을 합치는 “합수합토식”을 추진했다. 

어느 날 새벽, 제주대를 둘러싼 경찰의 눈을 피해 전대협 통일선봉대 대원들과 함께 백록담에 오른 적이 있다.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됐다. 겨우 백록담 분화구로 내려가 물과 흙을 채취하는 장면을 취재하고 내려오다 결국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 발각됐다. 물과 흙을 가진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서귀포경찰서로 연행됐다. 

나는 경찰서에 가자마자 소변을 봐야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가 취재한 필름 2통을 팬티 속에 숨겼다. 얼마 후 경찰들이 취재한 필름을 내놓으라고 하자 학보사 기자로 취재를 왔으니 먼저 전화하게 해주면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허락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실랑이가 있고 난 뒤 나는 카메라의 필름 덮개를 열어젖히고 필름을 뽑아 던졌다. 주머니 속에 있던 두 통을 더 꺼내 필름을 뽑아서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취재한 내용은 절대 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대략 4~5일은 경찰서에 붙잡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진술조서 쓰기조차 거부했다. 

그 사이 경찰은 우리 부모님을 찾아가 ‘아들이 보통 세뇌 교육을 받은 것 같지 않다’며 부모님을 데리고 와 회유하려고도 했다. 나중에 학보사에도 알려지고 해서인지 별 탈 없이 풀려날 수 있었지만, 부모님까지 이용하려던 경찰의 행태는 악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기자로서 얻은 교훈이나 가치는.

은근과 끈기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조용하고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기보다 시간을 갖고 잘 관찰하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해야 한다.

▶학생기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기자가 죽을 곳은 현장 바로 그곳이다.’

학보사 내 철문 위에 걸려 있던 붓으로 휘갈겨 쓴 글을 아직도 기억한다. 사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태풍이 불 때마다 혼자 취재를 다니며 늘 그 말을 되새겼다.

사진기자는 물론 소위 펜 기자에게도 현장은 중요하다. 전화 통화를 하며 쓴 기사와 현장에서 쓴 기사는 다르다. 진실에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현장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

‘라떼’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학보사 생활은 사회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이유 없는 빠따를 맞고, 불합리한 기사 교육 등의 문제들이 있었다. 많은 동기가 도중에 그만두고 절반이 안 되는 동기만 퇴임했다. 세상에 어떤 일을 끝까지 견디고 극복하는 과정이 자신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지와 도전이 곧 삶이 된다. 모두 잘 이겨내고 멋지게 퇴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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