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로사 못살리카/ 양전형 / 다층 / 2015

고등학생 때 뭍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아저씨가 내게 대뜸 제주 사투리를 써보라고 했다. 아마도 관광버스에 적힌 제주도 학교 이름을 보고 제주도에서 온 학생이라 생각하고 물은 것 같았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 친구가 그 아저씨에게 바로 대거리를 했다. “무사 마씨?(왜요?)” 아저씨는 처음 듣는 말이었는지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그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제주도에서 온 학생들이라고 반기는 건 좋지만 진귀한 구경거리 난 듯 취급하는 건 마뜩잖다.

또 군대에서 있던 일이다. 새로 온 소대장은 칠판을 하나 내무반 벽에 설치했다. 무기명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쓰라고 한 것이다. 제대 날짜를 쓰거나 건의사항을 쓰기도 했다. 이병이었던 나 역시 별생각 없이 몇 번 썼다. 

한 번은 제주어로 한 문장을 썼는데, 어느 고참이 내가 쓴 글을 가리키며 이거 누가 쓴 거냐고 물었다. 나는 무기명이라서 잠자코 있었는데, 어느 상병이 아무래도 제주도 말 같다며 나를 지목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손을 들었다. “무사 겅 용심냄수광?” 고참이 어색하게 읽으면서 무슨 뜻인지 내게 물었다. 나는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내게 버럭 용심을 냈다. “이거 병장들한테 하는 말이냐?” 나는 깜짝 놀라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날 탁구장에 집합해야만 했다.

양전형의 제주어 시집 <게무로사 못살리카>는 제주어를 살리기 위한 심정으로 낸 책이다. 유네스코에서 정한 소멸위기의 언어 제주어. 자서에서 시인은 “제주어만 나열된 작품이 아닌, 제주어도 있고 문학성도 있는 시를 짓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에 걸맞은 작품들이 많다. 

책의 구절은 제주어를 지키기 위한 마음으로 전해온다. 등꽃의 불빛 같은 그 마음이 따뜻하다. 시에 대한 지극한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시는 언어 예술이다. 제주어는 제주의 언어이기에 제주어 시 역시 예술로 별처럼 빛날 수 있다.

사투리는 이교도 같은 게 아니다. 어떤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비표준어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척이나 조롱거리가 될 수는 없다. 제주어 역시 한국어이다. 모두 풍성하게 쓸 수 있는 우리의 언어이다. 우리가 제주어 시를 쓰고, 읽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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