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선 네 안의 따뜻한 바람이 불 거야 / 클로이 / 위즈덤하우스 / 2021

제주 BOOK카페  <29>

백석의 시 <모닥불>에서 불타는 것들은 모두 무용지물로 여기는 것들이다. “헌신짝, 소똥, 짚검불, 가랑잎, 머리카락, 헝겊조각” 등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모닥불이 불을 유지한다. 주위를 따뜻하게 만든다. 모닥불이 불꽃을 내고 있기에 여러 동물과 사람들이 둘러앉아 불을 쬔다. 불을 쬐는 것들은 모두 평등하다. 누구든 차별 없이 온기를 나눈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에 등장하는 인물 노영달, 정 씨, 백화는 급속한 산업화의 시기에 도시로 나왔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의 인물들이다. 노영달과 정 씨는 건설 노동자로 장돌뱅이처럼 전국의 공사장을 돌아다닌다. 백화는 술집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영달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리해 보면서 잠깐 서 있었다”는 소설의 첫 문장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한 줄로 보여준다.

백석과 황석영은 둘 다 방랑자의 시기가 있었다. 백석은 북관에서 고향의 아무개 씨와 막역지간이라는 의원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다. 황석영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고, 북한에도 다녀왔다.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소설을 계속 썼다. 낯선 곳에서 낯익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인정(人情)을 느낄 때일 것이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신경림의 시 <파장>은 B급 정서를 보여준다. 신경림은 전국을 떠돌고서 기행시집 ≪길≫을 냈다. 또 신경림의 시 중 <가난한 사랑 노래>에서는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말한다. 당연하게 B급 삶에도 사랑이 있다. 

서민들의 가벼운 호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저렴한 값으로 운영하는 식당을 흔히 착한가게라 칭한다. 착하다는 건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제주시 보성시장에는 순대국밥 식당들이 몰려 있다. 그중 내가 좋아하는 현경식당의 순대국밥은 가격이 7,000원이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생각해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것 같다. 현기영 소설가도 비행기에서 내리면 가끔 고향의 맛이 그리워 이 식당을 찾는다고 한다.

책 ≪여기에선 네 안의 따뜻한 바람이 불 거야≫를 낸 일러스트레이터 클로이는 제주도에 이주해 그림을 그린다. 그를 몇 번 만났는데 그는 그의 그림처럼 늘 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제주도 삶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클로이의 그림은 따뜻하다. B급은 따뜻하다. B급 정서는 잘 나지 못한 대상을 안아주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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