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대응 지역 조성 사업을 위한 기초 도구

양혜연 건축공학 박사
양혜연 건축공학 박사

노년기 지역 환경의 중요성에 관한 논의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는 한국전쟁 이후 다출산ㆍ다사망 구조에서 베이비붐 시대를 지나 현재 저출산ㆍ저사망ㆍ고령화의 구조로 변화돼왔다.

2019년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 후 2030년부터는 인구감소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2020년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을 83.5세로 예측하고 있다. 100세 시대는 인간에게 축복이기도 하지만 은퇴 후 삶의 질에 따라 30~40여 년간 고된 인생 후반기가 될 수도 있다. 

저출산ㆍ고령화와 기대수명의 연장으로 비대해지는 노령 인구층은 많은 나라에서 노인복지예산 증가의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노년기에 접어든 베이비 붐 세대와 맞물려 사회적으로 새로운 과제들이 요구되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지역과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이전부터 논의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06년에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건강하고 안전한 노년기를 위해 지역 사회에 활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도시’를 ‘고령 친화 도시’로 정의했다.

오랫동안 노인 복지 정책의 이론적 배경이 돼왔던 Aging in Place (이하 AIP) 개념인 ‘살던 집에서의 계속 거주‘의 의미가 ‘시설에 의한 노인 장기 돌봄 체계’로 인식되며, 노령자 개인의 사적 공간에서의 물리적 개선과 케어와 같은 소극적 접근을 이상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Thomas and Blanchard, 2009). 이들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공적자금 활용 방식에 주목해 AIP 개념을 보완하는 Aging in Community (이하 AIC) 개념을 제안했다.

AIC는 ‘살던 지역 사회에서의 계속 거주‘의 의미로 사적 주거공간은 물론 지역 환경, 지역 내 사회적 관계까지 확장되는 개념으로서 탈시설화와 AIP 개념 사이에서 제3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보건복지 측면에서도 건강수명을 늘리기 위한 예방적 정책의 일환으로 근린 정주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용득, 2018). 

그러나 대부분 노령자 주거 복지 정책이 요(要)케어 저소득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집중돼 일반 중산층의 은퇴 후 지원 체계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18년 발표된 ‘지역사회통합돌봄기본계획’은 지역 내 노령층 정주 환경 개선을 지향하고는 있지만, 중앙정부의 주도로 저소득 요(要)케어 후기고령자 세대를 중심으로 계획돼 지역별 특성과 노년기 생애주기에 따른 욕구의 다양성을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베이비 붐 세대 은퇴자들은 지역 내 전기ㆍ후기고령자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며, 이것이 필자의 연구에서 노년기 지역 정주 환경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된 배경이다. 이를 통해 건축기획 및 지역 계획적 측면에서 ‘지역 특성을 고려한 고령 친화 정주 환경 조성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지역특성별 고령친화 정주환경 구현 방안 

모든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고령 친화 정주 환경 조성은 불가능하다. 사업에 따라 추진 기관 및 추진 주체도 상이하며, 저마다의 주관적인 인식 체계로 조성 사업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있다. 나아가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사업이 1회성 행정으로 끝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지역 특성을 고려한 고령 친화 정주 환경 조성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고려돼야 할 사고 체계와 도구로서 개념적 틀(Framework)이 필요하다.

개념적 틀은 지역의 추구 목표, 기본적 구현 요소,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실행 요소를  정의한 것이다. 이는 조성 사업 목표를 중심으로 세부 과제 및 실행 지원 요소들이 한 방향으로 집중되도록 한다. 개념적 틀을 토대로 수행된 조사 분석을 통해 지역 특성 기반 고령 친화 정주 환경의 구현 방안 및 모형을 제언하고자 했다.

연구 조사는 1단계 통계 분석-행정구역별 주거 사정 및 지역 이동 분석, 2단계 심층인터뷰-서울ㆍ수도권과 제주의 노년기 지역 환경에 대한 인식 분석, 그리고 3단계 현장 실사-고령 친화 정주 환경 조성 사례 분석 등이 수행됐다.

사례분석 지역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가장 먼저 고령화 및 초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 주목했다. 이에 일본의 고령화 대응 정책 관련 연구 논문, 관련 보고서 자료 조사 및 관련 기관과의 협의 후 선정된 지역의 실제 현지 조사를 수행했다. 

일본의 6개의 사례 지역을 종합해 정리하면, 각 사례는 하드웨어적 개선 강도에 비해 소프트웨어적개선 강도가 훨씬 높고 다양했다. 특히, 주거 요소 개선 과정에서 기존 자원을 리모델링하거나 부분적 개보수를 통한 장수명화를 지향했고, 지역 인프라 측면에서 지역 거점을 중심으로 내외부 공유공간의 확보와 개선에 중점을 두었다.

생활 지원 서비스 측면으로는 지역 컨시어지나 식사, 세탁 등의 서비스 체계를 병행해 유료 노인복지주택에서 제공되는 기능을 지역에 구현하고자 했고, 지역NPO, 주민 등 커뮤니티 연대는 시니어 일자리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사례별 추진 사항을 고령 친화 정주 환경의 목표 가치 측면으로 정리하면 지역적 특성은 다르지만, 목표 가치별 추진사항은 유사했다.

연구 조사를 통해 고령 친화 정주 환경을 위해 공통으로 고려해야 할 정주 요소별 구현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주택ㆍ주거의 측면으로는 어떤 지역 유형이든 AIC를 위해 노년기 생애주기를 통해 세대 구성의 변화 상황, 경제적 상황, 신체적 상황 등에 따라 선택 가능한 다양한 주거유형이 지역 내에서 공급돼야 한다.

둘째, 지역 인프라 측면으로는 해당 지역 커뮤니티의 구심이 되는 물리적 거점이 마련돼야 한다. 거점은 주민센터, 지하철역, 문화센터, 쇼핑몰 등 지역 주민들의 동선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물리적 공간이 될 것이다.

셋째, 생활 지원 서비스 측면으로는 도심형, 전원형 실버타운을 지역에 구현한다는 개념으로 커뮤니티식당, 커뮤니티 세탁방, 커뮤니티 Gym, 커뮤니티 컨시어지, 커뮤니티 관리실, 주택유지ㆍ보수지원센터와 같은 다양한 공유경제 기능을 지역 내에 마련해 AIC를 보다 안락하게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아파트단지와 같이 관리실이나 커뮤니티센터가 따로 없는 단독주택 및 다세대ㆍ다가구 지역유형의 경우에는 더욱 필요한 기능이다. 이러한 서비스 기능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공공은 물론 민간 기업이나 NPO 등의 다양한 주체에 의해 해당 서비스별 적절한 가격 체계(Pricing) 수립이 필요하다.

넷째, 커뮤니티 연대체계 측면으로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운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민센터, 문화ㆍ체육센터, 커뮤니티 식당, 커뮤니티 텃밭 등과 같은 지역 공유공간의 적극적인 활용이 중요하다.

또한 생활 지원 서비스를 중심으로 지역 내 시니어 일자리와 수요ㆍ공급 관리 체계를 마련해 지역에 대한 애착과 액티브한 노년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지역소멸 위기 예방적 대응을 위해 지역커뮤니티 연대의 중요한 기능으로서 귀향 지원, 단기ㆍ장기 이주 지원을 위한 지역 통합 창구를 마련한다.

저출산ㆍ고령화 현상이 미치는 영향이 행정구역별로 다름에도 유사한 사업이 반복되는 것은 특성을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인 솔루션이 아니라 각지역의 특성과 상황이 반영된 지역계획의 패러다임 변화와 지역 특성을 고려한 고령 친화 정주 환경조성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고령 친화 정주 환경의 개념적 모형’을 도출할 수 있었다. 개념적 모형은 노년기에 건강하게 AIC를 지속할 수 있는 기본 정주 환경 모형이다.

개념적 모형을 바탕으로 지역의 행정 단위와 주된 주거유형의 조합인 ‘기본 속성’과 고령 비율, 노후도, 교통인프라, 지역 이동 특성 등의 ‘상세속성’, 그리고 지역의 상습 재난 상황, 도시재생ㆍ재개발과 같은 ‘특수속성’을 파악해 지역 특성별 차별화된 모형을 도출할 수 있었다.

맺음말

필자의 연구는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에서 지역 사회 역할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연구에서 ‘지역’을 강조한 것은 고령 친화 정주 환경 관련 정책과 사업들이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함이다. 

이는 ‘살던 집’에서 돌봄을 강조하는 탈시설화담론으로부터 시작된 Aging In Place(AIP)에서 나아가 활동적인 노년기를 보내며 지역 사회 계속 거주를 지향하는 Aging In Community(AIC)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건축 기획 및 지역 계획 관점에서도 인구성장기 초등학교 보행권 중심 페리의 ‘근린주구론’에서 나아가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에 부합하는 패러다임 변화가 불가피하다.

연구를 통해 제언한 ‘지역 기반 고령 친화 정주 환경 조성의 개념적 틀’, ‘정주 환경 모형’ 등이 향후 고령화 대응 정주 환경 개선 사업을 위한 기초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양혜연(2023). “지역 기반 고령 친화 정주 환경 조성 방안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제주대학교 대학원

김용득 (2018). 탈시설과 지역사회중심 복지서비스 구축, 어떻게 할 것인가? : 자립과 상호의존을 융합하는 커뮤니티케어. 보건사회연구,38(3), 492-520.

Thomas, W. and Blanchard, J. (2009). Moving Beyond Place: Aging In Community”. Generations,

33(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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