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사 동이/ 노수미/ 서귀포신문/ 2018

제주 BOOK카페  <30>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가을이 우리에게 왔다. 한라산 단풍 명소 몇 군데 중 한 곳이 하원수로길이다. 이 하원수로길 끝에 무오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가 있다.

<법정사 동이>는 1918년 10월 7일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 이야기를 동화로 담은 책이다. 이 운동은 3ㆍ1운동보다 먼저 일어났고, 강창규 스님을 비롯해 지역 주민 700여 명이 참여했다. 이 일로 감옥생활을 하고,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람도 있다.

하원수로는 물이 부족했던 하원에서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한라산에서 마을로 물길을 내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일제에 저항한 것과 닮았다. 영실 입구에서 시작해 무오법정사까지 걷는 이 길은 하원수로길이라 이름이 붙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로 농사도 짓고, 밥도 지었다. 저녁밥을 짓는 사람을 위해 수로를 내듯 어두운 밤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어두운 밤길을 걸은 사람들이 법정사 항일운동을 펼친 사람들이다. 

물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걷으면 어느새 무오법정사에 다다른다. 일제가 항일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불태워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한라산 둘레길 중 한 구간인 이 하원수로길은 동백이 많아 명명된 동백길과 겹친다. 불의를 보고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1918년에서 30년 지나 다시 이 섬에서 일어났다. 이때는 불길이었다. 

이 책에 이런 말이 있다. 큰 스님이 어린 동이에게 하는 말이다. “제주는 우리나라의 닻에 해당하느니라. 이제 우리가 닻을 들어 올렸으니, 배는 움직이기 시작할 게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배는 절대 멈추지 않으니, 더디 가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 가거라.” 동화는 이듬해 봄에 끝나지만, 이 말을 들은 동이가 실제 제주의 아이라면 훗날 4ㆍ3을 맞이할 것이다. 

관음사는 4ㆍ3 당시 유격대와 토벌대의 격전을 벌인 곳이다. 훗날 동이는 출가를 하여 관음사의 유격대가 되지는 않았을까. 산속에 숨어있던 동이는 사농바치가 도채비고장을 보며 들려준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원래 진짜배기는 숨어있는 법이거든. 꽃이든 사람이든.”

제주도의 하천은 대부분 건천이지만, 그 물이 땅속으로 흐른다. 법정사 근처 도순천은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다. 역사의 물이 흐른다. 오는 주말에 한라산 둘레길을 걸으며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서 무오법정사에 들려 제주의 역사도 떠올려보면 우리의 마음에 가을이 잘 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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