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생에게 ‘인권’을 묻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BIG KINDS)에서 2023년 10월 3일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대학원생’이 포함된 언론 보도 300건을 분석해 뉴스와 연관성이 높은 키워드를 시각화한 자료. 도출된 총 29개 키워드 중 ‘권리장전’, ‘갑질’, ‘성추행’ 등의 키워드가 10순위 안에 들고 있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BIG KINDS)에서 2023년 10월 3일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대학원생’이 포함된 언론 보도 300건을 분석해 뉴스와 연관성이 높은 키워드를 시각화한 자료. 도출된 총 29개 키워드 중 ‘권리장전’, ‘갑질’, ‘성추행’ 등의 키워드가 10순위 안에 들고 있다.

2020년 제주대학교 인권실태조사 결과, 대학원생이 학내 인권 문제에 있어 취약한 집단 중 하나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결코 제주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2018년에 약 200명을 대상으로 대학원 연구 인력의 권익 강화 관련 설문을 진행했더니 전체 응답자 중 74.1%가 대학원 내 갑질이 존재한다고 답했거든요. 그로부터 5년이 흘렀습니다만, 대학원생분들의 권익은 안녕하신가요?

지난해 12월, 제주대 해양스포츠센터장직에 있던 K교수가 제주도로부터 지원받은 사업비 중 일부를 빼돌린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업의 연구책임자였던 K교수는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연구원의 이름을 허위로 명단에 올린 후 인건비를 챙겼다. 연구 인건비는 연구원의 개인 계좌로 들어간 뒤 다시 K교수에게 전달됐다. 이 과정에서 K교수의 제자인 네 명의 대학원생이 ‘졸업’을 담보로 가담됐다.

단순히 횡령만이 문제가 아니다. 제주대 인권센터가 발간한 <제주대 대학원생의 인권보호를 위한 인권침해 대응 매뉴얼>에서는 교수 또는 랩(lab)장이 연구실 내 대학원생의 등록금 지원 및 회식비, 경조사비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학생인건비 지급 통장과 계좌 비밀번호 등을 요구하는 행위(교수-대학원생 간 인건비 횡령)를 ‘갑질인 동시에 근로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교무처에 따르면 K교수는 지난 9월 12일자로 중징계처분을 받고 정직된 상태다. 이 사건을 두고 현역 대학원생 A씨는 “운 좋게 얻어걸렸다”며 일침을 놓았다. 들키지 않았을 뿐 이러한 갑질 형태는 대학원 내 이미 만연하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 분석해보니… 대학원생 연관 키워드는 ‘권리장전’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BIG KINIDS)에서 지난 10년간(2023년 10월 3일 기준) ‘대학원생’이 포함된 언론 보도 300건의 연관어(검색 결과 중 분석 뉴스와 연관성이 높은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권리장전’의 키워드 빈도수가 가장 높았다. 도출된 총 29개 키워드 중 ‘갑질’은 7순위를 기록했다.

교육부가 정책연구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2018)에서 2013년 1월부터 5년간 보도된 대학원 인권침해 사례 언론 기사를 분석한 결과, 집계된 총 534건의 보도 중 인건비 횡령 관련 기사는 138건으로 폭력(성추행, 폭언 등) 관련 기사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논문 표절 관련 기사 68건 외에도 부당 업무지시, 논문 심사비, 실험실 안전사고 등을 보도한 기사들이 관찰됐다.

여러 사례를 함께 다루며 소개하는 일부 기사를 제외하고, 사건별로 재분류했을 때는 총 145건의 사건이 집계됐다. 국공립대학 내 갑질 신고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자 권익위원회는 올해 7월, 대학별로 자체 갑질 실태를 조사하고 매년 결과를 공표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앞길 막힐까 혼자 타협하는 학생들

직장갑질119가 게시한 <2020 대학원생 설문조사 보고서>에서 ‘학내 근로 이외에 교수의 업무지시에 따른 노동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 280명 중 227명(81.1%)이 교수의 업무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응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졸업’을 무기로 든 교수 앞에서 대학원생은 절대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대학원생 A씨는 “학회에 두 개 논문을 투고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투고하는 게 졸업 요건인데 논문이 교수님 마음에 안 들면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보통 외부에서 몇 분이 오셔서 심사하시는데 교수님이 허가를 안 하면 그 심사 자체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A씨는 “선배들에게 듣기론 교수님과 (교수가 지휘하는) 어떤 일을 같이 안 하면 졸업이 안 되거나 논문 저자를 표기하는데 (대학원생이) 갑자기 제2 저자로 밀리는 일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주도권이 온전히 교수에게 있는 명확한 상하관계 속에서 대학원생은 선택권이 없다. 공부하러 대학원에 온 학생들이 교수의 대리기사 노릇이나 한다는 뉴스가 상식 밖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원 떠날 결심’해야 가능한 피해 신고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해서 쉽게 신고할 수도 없다. 대학원생이 보기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대학원생 B씨는 “인권센터에 직접 찾아가 신고한다는 건 정말 큰 용기를 가진 것”이라며 “폐쇄적인 대학원 특성상 고발자가 특정될 수밖에 없고, 가해 교수에게 어떤 조처가 내려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학원을 떠날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신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주대가 학부생 1178명, 대학원생 27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제주대학교 인권실태조사>에서 ‘인권침해 문제제기 후 결과’ 항목에 대한 답변이 대학생은 ‘개인적인 사과’가 68.1%, ‘무시당함/아무 응답 없었음’이 31.9%로 드러난 반면, 대학원생은 ‘무시당함/아무 응답 없었음’이 63.6%, ‘개인적인 사과’가 36.4%로 나타났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게 안 하느니만 못하다면 굳이 용기 내어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인권센터는 이 결과에 대해 “대학원생은 피해자와 가해자 당사자 간의 문제 해결 방식에 이르지 않고 인권침해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폐쇄성으로 인권침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있다(제주대 대학원생의 인권보호를 위한 인권침해 대응 매뉴얼).

B씨는 “인권센터에 신고해도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는 없는 것 같다”며 “어차피 교수와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허울뿐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명백한 피해 상황에 부닥쳐도 다시 ‘연구실’에서 교수를 마주해야 한다면 어떤 대학원생도 신고를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B씨는 “인권센터도 꼭 필요한 기구이지만 같은 대학원생끼리 끈끈한 게 현재로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마음이 맞는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대화를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인권센터 김성철 팀장은 “대학원생들은 중재를 통해 사건이 종결됐을 때 만족도가 오히려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대학원생들이 과거에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염려해서라고 예측한다”고 말했다. 중재합의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신고인과 피신고인이 각자 합의문을 작성해 인권센터에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김 팀장은 “수업 시간에 인권침해가 일어날 때는 분반이 있는 경우 다른 반으로 이동해 수업을 이수할 수 있도록 임시조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지도교수 변경… 결국 신고가 자유로워야

김성철 팀장은 “인권침해가 심각하게 발생해 지도교수와 함께 연구수행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지도교수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원은 교수별로 세부 전공을 담당하고 있어 지도교수 변경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이에 김 팀장은 “피해자가 연구실에 있을 때 최대한 지도교수와 직접 접촉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인권센터 규정에 따라 ‘임시조치’가 이뤄지는데 이는 온오프라인을 모두 포함한다. 특히 통신매체를 이용해 문자나 카톡 등으로 접근하거나 신고인을 회유 및 협박하는 2차 가해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신고가 아니더라도 학내 인권 문제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낼 수 있다. 인권센터는 올해부터 학생들과 자유 토론회를 진행하며 질적인 방법으로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참여 학생들은 토론회에서 대응책도 모색해본다. 집단마다 특성이 다른 점을 염두에 두고 인권센터는 대학원생이나 조교 등 집단을 나눈 개별 토론을 고려하고 있다.

김 팀장은 “교수는 학생들과 공동 연구자라는 마음을 조금 더 가졌으면 한다”며 “갑을관계가 아닌 함께하는 동료 연구자로 교수와 학생 모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권에 있어 맞다 틀리다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보다 좀 더 가치 있는 쪽을 지향하고 싶다”며 “무조건 처벌보다는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공동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대학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제주대가 지원하는 인권침해 신고 및 상담 창구로는 인권센터와 학생상담센터 외에도 대학원생이 고충을 상담할 수 있는 ‘옴부즈맨’(Ombudsman) 시스템이 있다. 옴부즈맨은 대학원생이 학업 또는 연구 과정에서 겪은 문제나 이슈에 대해 의논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해당 부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갑질과 관련해서는 총무과에서 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총무과 김동엽 주무관은 “현재 국민신문고나 총무과 사무국을 통해 신고할 수 있다”면서 갑질신고센터 부재에 대해 “내년 상반기에 교무과, 인권센터, 총무과 세 부서를 통합하는 창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권침해 상담 신청 및 신고 연락망>
인권센터 help365@jejunu.ac.kr
학생상담센터 counsel@jejunu.ac.kr
일반대학원 ombudsman@jejunu.ac.kr
총무과 064-754-2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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