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길고 힘들었던 여름 기운을 몰아내고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시간이다. 가을은 하늘이 높아지고 농작물이 풍성하여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이기도 하고,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어 학문을 탐구하기에 좋은 등화가친의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선선한 날씨에 밤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여유를 즐기며 독서를 하기에 적합한 시기여서이기도 하고, 종이 발명 이전 대나무 죽간을 사용했는데 봄에 심은 죽순을 키워 죽간으로 만든 계절이 가을이어서 이 시기 책이 많이 보급되어서이기도 하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는 진부한 질문이다. 책 한 권에는 저자의 오랜 경험과 날것의 지식이 온전히 들어 있고, 우리는 그 저자의 오랜 시간의 성취를 몇 시간의 노력으로 흡수할 수 있다. 더구나 독서는 인지 능력의 향상, 창의력과 사고력 증진, 정신적 노화 방지 등 독서의 효능으로 흔히 말하는 여러 장점이 부차적으로 따른다. 그런데 장점만 있어 보이는 우리의 독서 실태는 어떠할까.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한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의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을 포함한 종합독서율은 47.5%였다.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성인 1인당 연간 종합독서량도 4.5권에 그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였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는 ‘시간이 없어서’, ‘다른 매체나 콘텐츠 이용’, ‘독서 습관 부족’이 꼽혔다. 

우리는 학업과 취업 준비와 업무에 치여 여유롭게 책을 들여다볼 시간적 여유를 잃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바쁜 현대인이란 표현은 물리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외면이기도 하고, 정신적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행과 스포츠 등 자기 계발 및 취미 활동이 성행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어쩌면 우리는 책을 볼 여유만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라는 글귀는 독서의 습관을 강조한 말이기도 하고, 독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책이란 게 참 묘해서 손에서 멀어지면 그 거리가 쉽게 손에 닿지 않는다. 책을 가까이 두기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꾸준히 책을 읽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책 이외 다양한 콘텐츠가 범람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유튜브와 게임, OTT와 SNS 등 책 이외 즐길 거리가 넘치고 쇼츠라고 불리는 짧은 동영상으로 웬만한 정보를 쉽게 얻는다. 그러니 긴 호흡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 힘들어진다.

요약본으로 줄거리를 알 수는 있지만 전체의 맥락과 세세한 서사는 알기 힘들 듯, 세상사는 요약본으로 압축될 수 없는 일이다. 그 세상사에는 각자의 논리와 삶이 있고, 저마다의 간절함으로 삶을 추구하는 우리가 있다.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우리를 알아가는 일이고, 나를 찾는 일이 된다. 10월이다. 이 계절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나 읽고 싶었던 책을 들고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면 어떨까. 저비용 고효율의 가치 있는 여행이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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