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제주 작가 시점 18

제주서 글쓰기 흥미 찾아
아이는 ‘예비 어른’ 아냐
교훈보다 재미 추구해야

노수미 작가
노수미 작가

인터넷에 ‘어린이를 위한 추천도서 100권’을 검색하니 교훈과 감동을 준다는 책들이 상위권 자리를 꿰차고 있다.  필독서로는 역사 전집이나 논술 대비서가 꼽힌다. 책에 꿀을 발라 아이들의 독서 습관을 만들었다던 유대인 문화 같은 달콤한 배려 따윈 없다. 아이들을 ‘위한’ 책은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책일까?

한편 전적으로 아이들 편에서 동화를 쓰는 이가 있다. 책 <어린이법 9조 2항>, <AI 디케>, <어린이날이 사라진다고?> 등을 펴낸 노수미 작가의 글에는 세상에 도전장을 내미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는 <KB 창작동화제>, <다새쓰 방정환문학공모전>, <서귀포 문학상>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노수미 작가는 고향 전주를 떠나 서귀포에 정착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떠밀려 간 법대에서 고시 공부만 하며 20대를 보낸 그에게는 새로운 모험이 필요했다. 노 작가는 인생의 전환점을 갈망하던 남편과 함께 제3의 곳인 제주로 향했다. 고향을 뜬 부부가 제주에서 찾은 새로운 생존법은 ‘글쓰기’였다.

“남편이 제주 생활과 육아와 관련한 글을 블로그에 연재했는데, 그때 제주 이주 열풍이 확 불면서 마치 우리가 노마드적인 삶을 사는 선봉장처럼 언론에 비치더라고요. 나중에 남편이 책까지 내게 되면서  나는 왜 글 써볼 생각을 못 했나 싶었죠.”

노 작가는 마을 도서관에서 개설한 동화 쓰기 강좌에 들어갔다. 동화는 짧고 쉬우니 쓰기 편할 거라 생각했다. 동화를 얕본 탓에 글쓰기 욕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둘째를 낳고 학원 강사로 일하던 때 다른 도서관에서 동화 쓰기 강좌를 열었고, 그는 이끌리듯 신청서를 냈다.

다시 펜을 잡은 노 작가는 이번엔 제대로 글과 마주하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최소 인원수 미달이 문제였다. 강좌를 살리기 위해 인맥을 총동원했지만, 명단에 이름만 올릴 뿐 수업에 매번 출석한 이는 그가 유일했다. 덕분에 수업은 일대일 속성 과외로 진행됐다.

후속 강좌까지 6개월 넘게 닥치는 대로 글을 써 내린 노 작가에게 강사는 공모전 응모를 권했다. 시간을 보증하듯 그가 낸 세 편의 글이 본심에 올랐다. 그다음 해에는 대상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일직선을 그리던 인생 그래프에 곡률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깜짝 놀랐죠. 앞으로 열심히 쓰면 길이 보이겠다는 느낌도 들고….”

당선작인 <토씨네 백 년 공방>은 부모의 자식 자랑 욕심이 낳은 ‘말벌레’로 고통받는 ‘영재’를 위해 공방 주인 ‘토리’가 거짓말 탐지 기능을 탑재한 ‘만능귀’를 선물하는 이야기다. 학부모는 좋아하지 않을지 모를, 아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동화다.

이후에도 연이어 수상 소식을 들려온 노 작가는 공모전이 ‘체질’인 듯했지만 그가 공모전에만 수십 번 응모한 데는 현실이 뒤따른다. “지방 작가들에겐 기회가 별로 없어요. 요즘은 앤솔로지(문집)가 워낙 대세다 보니 여러 명이 팀을 꾸려 책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행사가 적다 보니 그러긴 힘들죠. 편집장과 작가가 만날 수 있는 장도 없고요. 공모전이 유일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그가 공모전에만 도전한 건 아니다. 노 작가에게는 글을 써 달라는 의뢰도 들어왔다. 제주 법정사 항일 운동 100주년을 맞아 쓴 책 <법정사 동이>가 그다. 이는 본격적인 제주 공부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자료 공부를 어마어마하게 했어요. 백 년 전의 사람들이 뭘 먹었고, 옷차림은 어땠는지 생활사로 시작해서 당시 한라산의 모습까지 알 필요가 있었죠. 한라산의 조릿대가 지금은 한라산 중턱 이상까지 올라갔는데 이게 기후 위기와 관련이 있거든요. 과연 백 년 전에도 조릿대가 해발 700m인 법정사까지 있었을지 의구심도 들었고요.”

지역방송 모니터 요원으로 있으며 하루에 네 시간씩 제주 현안을 둘러본 노 작가는 책 <제주도를 지키는 착한 여행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제주 지하수, 바다 쓰레기, 제주어 등 아홉 가지 주제를 들어 제주를 지키는 여행법을 소개한다.

“동화는 읽을 때 재밌어야 한다”는 노 작가의 글쓰기 철학은 늘 환영받지만은 않는다. 그는 아이의 잘못을 어른이 따끔하게 혼내고 결국 반성으로 맺는 ‘착한 결말’은 아이들이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미성숙한 존재니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아이의 삶은 어른이 되기 위한 예비 과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삶은 그 상태로 현재진행형이거든요. 그 자체로 온전한 거죠.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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