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과 설움이 담긴 배, 재일제주인의 삶을 운반하다
“우리는 우리 배로!”, ‘자주운항운동’을 재조명하다

제주-오사카 직항로 개설 100주년 기념 전시회의 전경
제주-오사카 직항로 개설 100주년 기념 전시회의 전경
(위). 재일제주인의 이주 역사가 전시된 모습
(위). 재일제주인의 이주 역사가 전시된 모습

제주-오사카 직항로 개설 100주년 기념 전시회 ‘그래도 우리는’이 10월 7일부터 11월 3일까지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렸다. 전시는 제주특별자치도 주최 및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센터 주관으로 진행됐다. 

재일제주인센터(센터장 손영석)는 “제주-오사카를 잇는 제판항로를 둘러싼 당시의 정황과 자주운항운동을 재조명하고자 한다”며 “재일제주인들의 존재를 도민들에게 알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전시에서는 이지유 작가의 그림ㆍ영상 작품, 조지현 사진작가의 사진집 <이카이노, 일본 속 작은 제주>, 김기삼 사진작가의 <달 보멍 하영 울었주_일본에 뿌리내린 제주인 이야기>를 비롯한 작품을 통해 재일제주인 1세대들의 삶과 정신을 만나볼 수 있다.

“제판항로를 통해 제주에서 오사카로 건너간 제주인들은 한때 5만여 명에 달하며,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25%에 해당한다.”

(전시 내용 中) 제주인의 이주역사는 1903년 제주해녀들의 일본도항에서부터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며 일본은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 위해 제주도에 방문했다. 

이후 1923년 3월, 일본 해운사 아마사키기선에서 운영하는 여객선 ‘군대환(기미가요마루)’의 정기 운항이 개시됐다. 

손 센터장은 “소련의 군함 만쥴호를 여객선으로 개조한 ‘제2군대환’ 승객의 정원은 365명이었으나, 2배 가까운 인원이 승선했으며 700여명의 짐까지 배에 실었다”며 배 안에서의 생활에 대한 고충을 짐작했다.

“우리는 우리배로!”

항로를 독점하며 군대환을 운영하던 아마사키기선은 뱃삯을 터무니없이 올려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 바로 그 배경이 ‘자주운항운동’의 불씨가 됐다. 

이전에 한번 승선인동맹을 맺어 선박 운임의 인하를 요구했지만, 협상을 거절당했고 결국 일본의 배를 빌려 직접 운영하는 ‘기업동맹기선부’가 설립됐다. 

그로 인해 가격경쟁이 발생하자, 비로소 뱃삯은 조정됐다. 일본 업체에서 운영하는 군대환만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방법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기업동맹기선부의 ‘제2북해환’이 있었다.

1929년, 제주도 내 119개 리가 가입한 ‘동아통항조합’이 창립됐다. “덤핑적인 승선운임에 기만당하지 말라!”, “민주적ㆍ자치적 경영과 도항의 자유 획득”을 결의 사항으로 했다. 그렇게 통항조합이 일본에서 임대해 온 ‘고룡환’이 출항했다. 중간에 노골적인 탄압으로 고난도 있었지만, 통항조합은 그럴수록 더욱 결속해 나갔다. 

이에 힘입어 ‘복목환’이 출항하지만 여러 번 좌초됐다. 정기대회는 지속해서 개최됐지만 결국 조합은 영리 경영단체로 방향을 전환했다. ‘우리의 배’는 줄줄이 운항이 중단됐다.

손 센터장은 “조합 내 의견 마찰로 단결이 어려워 끝까지 좋은 결과를 맺지는 못했지만, 이 운동은 일종의 대항, 나아가 항쟁이라는 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며 “제주인들이 일본 배에 의존해 이동했다는 이미지가 강해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도민들이 자주운항운동이라는 항쟁을 했던 기록이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도민-재일제주인, 어떻게 이어가나

손 센터장은 “처음 건너간 분들이 1세대, 그분들의 자녀들이 2세대로 지금까지 5, 6세대까지 쭉 내려왔다”며 “2세대만 해도 한국어를 전혀 모르고 제주도에 와본 적도 없는 분들이 대다수인데 하물며 해를 거듭할수록 그 밑 세대들은 더 무뎌질 것”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미래를 이어 나갈 청년층들이 서로 소통하면 좋을 거 같다”며 “특히 3세대 이후 분들이 제주도 와서 대단한 일을 하기보다는 와서 보고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대학에서 그분들이 제주도에 방문할 수 있도록 교육적인 측면에서 학생들과 같이 어우러질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일제주인의 따뜻한 고향 사랑

재일제주인들의 기부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이 세운 재일제주인 공덕비가 제주 곳곳에 있다. 재일제주인들이 남긴 이 기부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리’ 단위로 기부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단순히 우리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 제주도가 잘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살던 그 동네가 이제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해 수많은 기부가 이어졌다. 이 기부금으로 마을에 도로를 깔고 전기ㆍ수도 시설을 갖췄으며 많은 학교도 지을 수 있었다. 

제주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귤’도 마찬가지다. 당시 “감귤 나무 하나만 있으면 자식들 대학 보내고 졸업할 때까지 문제없다”라는 말이 있었다. 제일재주인들은 이러한 값비싼 감귤 묘목을 많이 기증했다. 

손 센터장은 “제주도가 발전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데 재일제주인들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라며 “그들이 결코 건너가서 잘살게 되고 여유가 생겨 기부를 한 게 아니라, 당장 나는 힘들지만 고향이 더 살기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기부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끝으로 “재일제주인들의 진실한 고향 사랑이 실천됐다는 사실만이라도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