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우 편집국장
고지우 편집국장

학교는 마치 제주대신문 사용설명서를 쥐고 있는 것 같다. 상품이 설명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고객센터에 애프터 서비스를 요청하는 게 마땅한 것처럼 말이다. 걸려온 전화로 불만을 응대할 때면 내가 기자인지 상담원인지 헷갈린다.

대학 언론을 향한 학생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을 뿐인데 학교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다시 고민해 본다. 학교가 생각하는 대학 언론의 역할은 뭘까. 학교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처럼 그냥 ‘기타 지원시설’인가? 약 3년 동안 축적된 학보사 경험에 근거하면 감시기구보다는 홍보실에 가깝다.

간혹 좋은 기회가 생겨 제주대신문 대선배님들을 만나 뵐 때가 있다. 감히 선배님이라 불러도 괜찮을지 오래 번뇌하다 결국 ‘선생님’ 호칭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총장실에 난입했던 일부터 시작해 웬만한 첩보영화 못지않은 ‘그때 그 시절’ 학보사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겠다. 진담이라면 그거대로 큰일이다. 내 먼 후배들에게 해줄 이야깃거리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몇 달 전, 전현직 대학언론인이 모여있는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단톡방에 들어갔다. 대학언론인 네트워크는 대학 언론의 위기 극복을 위해 대학언론인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다. 매일 10명도 안 되는 동료 기자들과만 대면하다 갑자기 150명이 넘는 대학언론인과 조우하니 기분이 묘하다.

단톡방에서 대화가 오고 가지는 않지만 콘퍼런스 등 대학언론인 관련 행사 정보를 주로 공유한다. 간간이 눈팅을 하다 눈에 들어오는 건 타 대학의 대학 언론 탄압 소식. 다들 말없이 ‘공감’ 스티커를 누른다.

최근엔 한성대학교 방송국 <HBS>가 학교의 편성권 침해에 항의하는 목적으로 교내 단신 방송 등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HBS>에 따르면 기숙사 시설 관리 실태를 다룬 보도에 학교 측은 논의 중인 부분을 기사화했다며 삭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보도가 ‘선동적’이라는 학교의 입장에 <HBS>는 “논의 중인 부분이어도 대학구성원이 알아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해 보도했음을 밝힌다”고 반론했다.

뉴스 보도에 있어 사건과 얽힌 관계자의 허가가 왜 필요한지 나도 묻고 싶다. 학교 이미지를 실추한다며 학생기자들에게 ‘착한 보도’를 운운하는 학교 관계자들은 반성하고 당장 그 전화기를 내려놓으라 당부드린다. 전국의 대학언론인들이 누구보다 조용히 학교의 만행을 주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총장실까지 쳐들어가진 못해도 얼마 안 남은 편집국장의 소명을 다할 깜냥은 된다.

제주대신문은 사용설명서가 없다. 고치려야 고칠 수 없다. 제대로 작동하길 원하신다면 자세를 고쳐 앉고 빠뜨린 부품이 없는지 재확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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