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린고비’를 지독한 구두쇠로만 인식한다. 요즘 제주청년들이 고물가ㆍ고금리 시대를 맞아 ‘신 절약법’을 공유하는 오픈채팅방인 ‘거지방’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거지인가 아니면 자린고비인가’라는 반문을 던질 수 있다.

최근 2030세대에서 지출 내역을 공유하거나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서로 조언하는 ‘거지방’이 인기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을 기점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치솟는 물가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지자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색 절약문화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거지방에 입장해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마실까요’라고 질문하면 ‘커피는 사치다. 참아 봐도 너무 마시고 싶으면 자판기 커피나 편의점을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또 ‘냉장고에 샤인머스켓이 있다’고 하면 곧바로 ‘너네집 부자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참으로 풍요속의 빈곤으로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에는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 하면서 소비하는 ‘욜로족’이 인기였다면 ‘거지방’은 이와 정면으로 대치된다. 그야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적자생존이요, 각자도생의 세태다.

얼마 없으면 사회로 진출해야 하는 예비 취업자에게 이번 겨울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며, 제주도가 처한 가장 근본적인,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실타래의 첫 부분과도 같다. 젊은 세대들이 안정적 일자리를 찾게 된다면 결혼문제와 저출산문제, 주거문제 등이 지금보다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일자리는 없고, 전국에서 가장 낮은 임금에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가격은 현실이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최근 한라일보와 KCTV제주방송, 제주의소리, TBN제주교통방송, 제주와미래연구원은 공동기획으로 제주와미래연구원에서 ‘청년취업, 활성화 방안은?’을 주제로 정책토론을 진행했다. 주요 내용을 간추리면 청년인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급여와 복지 등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여기에 1차ㆍ3차산업에 80%가량 치중된 제주도의 산업구조의 한계도 해결 과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해결책은 청년보장제 시행 등 지자체의 청년정책 강화를 비롯해 사회 전체의 분위기 조성에 있다고 토론자들은 주장했다.

자린고비라는 말의 유래에 있어, 가설이지만 충북 음성군에 살았던 충주 자린고비라 불리는 실존인물인 조륵(1649~1714)이 모델이라는 설이 있다. 그는 평생 구두쇠 짓을 해서 모은 돈으로 가뭄에 시달리던 1만호의 백성들을 구했다. 이에 그 지역 주민들이 감동해 ‘자인고비(어버이같이 인자한 사람을 위한 비석이라는 의미)’라는 이름의 비를 세운 데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암울한 현실에 제주청년들은 강인한 제주인의 DNA로 잘 버티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격려하고, 이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우리 모두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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