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BOOK카페 <33>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 김정숙 / 한그루 / 2023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 김정숙 / 한그루 / 2023

김광협의 제주어 시집 <돌할으방 어디 감수광>(태광문화사, 1984)은 제주 민요의 가락을 살리면서 제주어의 맛을 보여준 시집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제주어 시집들은 대개 교훈적이거나 계몽적인 작품들이 많다. 마치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존다니 같다. 아니면 단순히 회고담으로 쓴 작품들이다. 공통적으로는 제주어가 들어가면서 비유를 비롯한 시의 특징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제주학연구센터가 연 제주어 포럼 ‘눌’에 참여했다. ‘제주어 사전’이 주제였는데 고맙게도 내 산문집 <제주어 마음사전>(걷는사람, 2019)을 제주어 사전의 반열에 올려주었다. 그때 토론자로 나선 김동윤 평론가가 제주어 문학상의 필요성을 말했다. 제주어를 보존하는 방법 중 하나로 문학상을 만들어 제주어 문학 작품을 장려하자는 취지다. 만약에 그런 상이 있다면 올해는 김정숙의 시집 <섬의 레음은 수평선 아래 있다>(한그루, 2023)가 받아 마땅하리라.

제주어 시는 제주도 토박이가 아닌 경우에는 이해하기 힘든 게 가장 곤란한 점이다. 하지만 김정숙의 시는 문맥의 힘을 통해 제주어의 뜻을 짐작하게 만든다.

제주어의 감각을 활용(<양이 진다>, <감성온도계>, <먹는 동사> 등)하거나 제주어를 풀이(<아침바람 찬바람에>,<같은 이름 다른 이름에 대하여>, <쿨> 등)한다. 제주어를 잘 몰라도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제주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제주어 시에 일가견이 있는 강덕환 시인이 발문을 썼다. 역시나 강덕환은 김정숙의 시에 감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준비된 마음 없이 내게 밀려오는 재기에 주체할 수 없다.

“개굴개굴 울어서 개구리라 했다면/ 가가가가 울어서 가가비라 했겠죠/ … / 맹꽁맹꽁 운다고 맹꽁이라 했다면/ 매앵해도 터지지 않는 입 맹마구리라 했겠죠.”(<같은 이름 다른 이름에 대하여> 부분)와 같이 어원을 상상하면서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넌지시 보여주는 시들이 흥미롭다.

이 책의 자서에는 제주어에 대한 시인의 평소 생각이 들어있다. “목젖 아래 가라앉아 있는 말입니다/ 뱃속에서부터 터득한 말입니다” 발문 제목도 ‘시인은 지역의 말과 소리로 그 정서를 표현하는 숙명적인 존재’다.

농업기술원 연구원을 하다가 지금은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는 김정숙 시인은 효소를 활용한 자연주의 농법으로 귤을 생산한다. 그 귤처럼 시가 참 진솔해서 또 좋다. 이제 이 시집이 있으니 나는 이 시집의 불빛이 비춘 곳에서 시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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