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우 편집국장
고지우 편집국장

벽에 걸린 11월 달력을 떼어내니 12월 달력 한 장이 힘없이 팔랑인다. 졸업을 코앞에 둔 4학년에게 이 한 장은 오 헨리 소설 속 애처롭게 매달린 마지막 잎새처럼 보인다.

일찍 진로를 찾은 덕분에 다른 친구들보다 취업에 대한 두려움은 덜하지만 현실(reality)이 뚜렷해질수록 조바심이 난다.

이상(ideal)이 머릿속을 지배하던 어린 시절에는 꿈이 참 크고 많았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심화반에서도 1등 한다는 친구가 진로 희망서에 적어낸 동시 통역사라는 직업도 근사해 보였다. 누가 꿈을 크게 가지라고 했던가. 꿈은 꾸는 거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꿈(dream)은 비현실적이다. 꿈에서 깨라는 말이 아니다. 꿈은 ‘현실’과 가장 반대되는 단어다. 사전부터 꿈을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라고 못 박는다.

환상에 가까운 꿈을 좇으며 자라온 우리는 현재 그 괴리를 맛보며 괴로워하곤 한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당차게 답할 수 있는 대학생이 얼마나 될까. 10년 후 나에게 편지를 끄적이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결국 주어진 현실에서 가장 최고의 삶을 누릴 방법을 모색한다. 미래를 점쳐보는 일이 대표적이다.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에서 올 초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 아르바이트생 548명 중 63.5%가 사주, 타로, 별자리 등 운세를 본 경험이 있었다. 절반 이상이 운세를 보는 이유로 ‘자신의 미래와 운세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응답을 보였다. 매일 아침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단돈 만 원으로 당장 인생 흐름 정도는 가볍게 들을 수 있다니 상당히 매력적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용하기로 소문난 점집에 가면 인생을 설계하는 게 가능하다. 실패와 좌절 경험이 많을수록 점괘 의존도가 높아진다. 실제로 중년층에 들어서면서 그 비율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한편으로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에 기대 한 방을 노리기도 한다. 재작년 20대 아르바이트생 1,049명에게 ‘복권’을 구매하느냐 물었을 때는 47.2%가 정기적으로 구매한다고 답했다. ‘작은 확률이지만 인생 역전의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라는 응답률이 무려 85.5%에 달한다. 현실과 타협하려면서도 ‘내 집 마련’, ‘세계 일주’ 등의 꿈은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 대조된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다. 답안지를 베끼며 문제를 푸는 것도, 운에 맡겨 정답을 찍는 것도 나에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잠을 자야 꿈을 꾼다’는 속담이 있다. 어떤 결과를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뻔한 이야기지만 기왕이면 꿈을 크게 꿔보자. 깨져도 그 조각은 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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