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정치는
‘권력의 증명’

권력은 늘 역사를 외면한다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국어국문학과 91학번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국어국문학과 91학번

이렇게 무능할 수 없다. 민생은 위기고, 거시 경제 지표도 갈수록 심상치 않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그 누구도 ‘신자유주의의 부활’을 외치지 않지만 유독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예외다. 법인세와 종부세를 깎아주는 동안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졌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상위 20%와 하위 20%의 종합소득격차는 43.1배에 이른다. 늘어난 부자들의 지갑은 서민들의 지갑을 빼앗은 결과다.

세금을 내야 할 사람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니 나라 곳간은 텅 비어만 간다. 2023년 세수부족으로 정부가 한국은행에서 빌려 쓴 돈만 113조가 넘는다.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과 연체액은 역대 최대 규모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경제 기조가 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기 힘들다. 사람 고쳐 못 쓴다고 했던가. 대통령은 바뀌지 않는다.

무능보다 더 심각한 것이 무감이다. 김건희 여사가 디올 백 뇌물을 받은 일을 ‘조그마한 파우치 하나’ 정도로 치부하면서 ‘공작’이니 ‘함정’이니 하는 말로 덮으려 한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파헤칠 김건희 특검법도 대통령은 거부했다. ‘공정과 정의 법치주의’를 내세웠던 대통령이 최소한의 정의마저 발로 걷어차버렸다. 이쯤되면 ‘대통령 위에 여사’라는 저잣거리의 풍문이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영국 <BBC>조차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서 보도했다. 현행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의 배우자는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1회 100만원 또는 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법 조항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는 명백한 청탁금지법 위반이다. 70% 가까운 국민들이 명품백 수수와 관련한 대통령이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자. “제가 볼 때는 거기에다가 또 저도 마찬가지고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좀 그거를 매정하게 좀 끊지 못한 것이 좀 어떤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되는데…” 대통령의 말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아쉽다”. 단 돈 몇 천원도 아쉬워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우는 서민들이 들으면 기겁할 소리다.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수수는 유감이나 사과 표명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공정과 정의 법치주의. 대통령이 늘 말하는 원칙은 왜 배우자 앞에서 작아지는가. 법치주의는 국민들을 법으로 겁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위임된 권한을 법과 원칙에 맞게 행사하라는 헌법적 규정이다. 대통령의 변명 아닌 변명을 보면서 2022년 8월 서울 신림동 반지하 침수 피해 사고 현장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침수돼 구조요청을 했지만 결국 반지하에 살던 가족 세 명이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졌다. 다음날 대통령은 침수 사고 현장을 점검한다며 반지하 참사 현장을 쭈그려 앉아 지켜보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대통령실의 홍보 문구와 함께였다. 그것은 고통에 아파하지 않고 고통을 구경하는 권력의 모습이었다. 재난을 점검하는 권력을 스스로 증명하는 사진이었다. 그것은 대통령의 정치가 사람이 아니라 권력의 증명 그 자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통령에게는 날이 갈수록 팍팍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침수 피해로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이,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밤거리에서 후진국형 재난으로 목숨을 잃은 259명의 목숨들이 그저 구경거리일 뿐이다. 대통령의 공정과 정의는 권한의 행사가 아니라 권력을 정의하기 위한 수사일 뿐이다. 공정과 정의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공정과 정의와 동일시하는 규정이다. 무능하고, 무감한 정권이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는 무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추락할 것인가 끌어낼 것인가. 역사는 결과를 알고 있지만 권력은 늘 역사를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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