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예원 사회교육과 4
현예원 사회교육과 4

한때 나는 인생이 뫼비우스 띠 같다고 생각했다. 태어나 유치원을 다니고 그 나이 때에 맞는 교육을 받으며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고 대학을 진학했더니 취직이란 벽을 넘어야 하는 삶. 학교, 집, 공부, 입시, 대학공부, 취직공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자꾸 도돌이표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남들도 다 하니까’ 이 한마디가 자신을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억눌렀다.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면, 취직하지 않고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고 산다면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그 시선이 무서워 스스로 더 뫼비우스 띠에 가둬왔다. 무한 생성되는 경쟁들 속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삶보다는 남들과 같은 삶을 밟아갔다. 이것은 절대 나 혼자만의 경우가 아니었다. 사회 속 거대한 뫼비우스 띠를 알아챈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자고 외치려니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의 투정인 것만 같았고 해야 할 것들만 바라보자니 인생이 너무 갑갑했다. 이는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질문은 ‘나는 왜 살지?’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태어났으면 사는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정작 살아가는 이유가 없던 것이다. 내가 원하던 모든 것이 허상으로 느껴졌다.

내 진로는 과연 내가 만든 것일까? 사회가 만들어낸 것일까? 성취 욕구는 만들어진걸까? 나는 왜 노력을 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사실 그 해답은 아직 찾질 못했다. 어떨 때는 열정을 느끼다가도 어떨 때는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성취를 느끼고 성장하는 자신을 마주할 때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삶은 절대 뫼비우스 띠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인생은 나선형과 같다. 그 여정은 반복적인 동시에 진보한다’ 반복되는 인생에서 나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됐고 성장하는 사람이 됐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절대 허상이 아니었다. 스스로 이뤄낸 온전한 나의 것이다. 모두가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살아감에 있어 작은 성장이 모여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반복되는 인생이 지루하다 느껴진다면,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해라. 수많은 내일이 모여 결국 남들과 다른 ‘나’가 그 끝에 서 있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대들의 ‘내 일’이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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