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하루 / 강건모 / 교유서가 / 2023

제주 BOOK카페 <35>

다정한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쟁투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다정한 사람을 만나기란 힘들다. 나는 운이 좋게도 이 사람을 안다. 처음 만난 건 서귀포 호근동에서였다. 시 모임에 그가 왔다. 비 오는 날 저녁에 애월에서 서귀포까지 왔다. 나라면 그 정도의 거리라면 포기했을 텐데 다정함이 그곳까지 오게 했으리라. 그의 말, 모습, 행동, 시가 다정했다.

이 책 <무탈한 하루>는 다정이라는 눈을 뭉쳐 만든 눈사람 같다. 문장이 부드럽고, 글 전체가 다정함을 바탕으로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말 그대로 무장해제가 된다. 그리고 궁금해지는 건 이 다정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하는 점이다.

환경적 요인을 찾을 수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구순의 나이에도 일기를 썼는데 “첫눈이 조금 내렸다. 종일 눈이 오고 계속 오고 있다. 밤에는 오지 않았다.”라고 쓴 것을 그는 기도처럼 되뇌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 슬픔을 안고 살아온 시간들, <바다의 남쪽>이나 <산사의 하룻밤>을 보면 알 수 있듯 주위 사람들이 그를 다정하게 만들었다. 그가 글쓰기 강좌를 열었을 때 ‘내 생애 가장 시적인 계절, 유년’이라고 주제를 정했을 정도로 그의 유년이 그를 다정하게 만들었는데, 그 유년의 다정함을 오래 간직한 결과가 이 책이다.

그리고 문장 연습에서 오는 다정함을 들 수 있다. 그는 실제로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에디터로 일했다. 제주도로 이주하기 전까지 문장을 다듬고 있었고, 제주도로 이주해서도 문장 다듬는 일을 한다. 교정, 교열이란 거칠고 어색한 문장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일이다. 언제가 그가 찻집에서 교정 보는 일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작은 전등 아래에서 일에 집중하는 그의 뒷모습은 숙련된 수선공의 모습 같았다.

그는 그가 편집한 책이 나오면 그 책을 주위에 알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야말로 책과 책의 저자에게 다정을 쏟는다. 사람과의 인연처럼 책과의 인연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다정한 문장가, 강건모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약속을 뒤로 미루고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그의 직업은 에디터나 에세이스트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문장가가 더 잘 어울린다. 문장가라는 직업이 없으니 의아하겠지만 그가 책을 편집하거나 글을 쓰거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은 모두 세상이라는 문장을 다듬어 펼치는 일 아니겠는가. 다정이라는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세상, 따뜻한 프리즘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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