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역사와 가치를 지닌 유일한 피난처, ‘제주오름’
제주참여환경연대, “문화적 접근의 오름 보전정책 많아지길”
오름 환경 위해 ‘자연휴식년제’ 실시할 필요 있어보여

탐방객의 증가로 흙과 모래가 쏠림에 따라 길이 훼손된 용눈이 오름의 모습
탐방객의 증가로 흙과 모래가 쏠림에 따라 길이 훼손된 용눈이 오름의 모습
‘휴식년제 오름 훼손지 집중 조사구역’으로  식물 조사와 연구를 위해 마련된 특별구역
‘휴식년제 오름 훼손지 집중 조사구역’으로  식물 조사와 연구를 위해 마련된 특별구역

오름은 말과 소를 키우기 위한 곳이었고, 밭을 일궈 먹을 것을 구하는 식량창고였다. 추위로부터 제주 사람들을 지켜주는 집이었고 평화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몸을 숨겨줬던 유일한 피난처이기도 했다. 반대로 학살의 장소가 됐던 오름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역사와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오름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고 보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아부오름을 지키는 나무 막대기

평범한 모습의 아부오름에는 특별한 분화구가 숨어있다. 삼나무로 둘러싸인 분화구가 수많은 풀밭과 나무 사이에 한 떨기 꽃같이 존재한다. ‘아부’는 제주 방언으로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사람을 뜻하며, 8m 깊이의 움푹 파인 분화구는 마치 믿음직한 어른이 앉아있는 모습과 같아 ‘아부오름(亞父岳)’이라 불린다. 분화구는 땅속 용암이나 화산가스를 분출하는 구멍을 말한다.

아부오름은 1998년 개봉한 영화 ‘연풍연가’와 1990년에 개봉한 ‘이재수의 난’의 촬영지다. 신축제주항쟁을 다룬 ‘이재수의 난’의 개봉으로 탐방객이 증가했다. 당시에는 오름의 분화구 능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탐방객 수의 증가로 오름이 훼손되자, 이쑤시개 같은 나무 막대기를 산책길 양쪽에 꽂아 통행을 막았다.

제주의 오름은 대부분 스코리아(화산송이) 위에 얇은 흙이 덮여있다. 스코리아는 다양한 구멍이 있는 암석이며, 제주 방언으로 ‘송이’라 불린다. 이 암석은 작은 충격에도 금세 손상되며 탐방로 외의 땅을 밟을 경우 쉽게 파손된다. 특히 아부오름은 탐방객들이 탐방로를 이탈하거나 산악자전거 등의 이용으로 땅이 훼손된 바 있다. 

권제오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권제오름은 제주대학교 교내에 위치하고 있다. 건제오름이라고도 하지만 명칭의 뜻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부오름이나 용눈이오름과는 달리 분화구가 없는 작은 화산이다.

권제오름에 들어서면 ‘오름 관리단체 지정 안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KTcs 호남본부 제주센터는 작년 3월 ‘1단체 1오름 가꾸기’ 운동에 선정돼 권제오름을 한 달 간격으로 모니터링 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또한 매년 재선충병약을 투입해 권제 오름 안에 서식하고 있는 식물과 소나무 등을 관리하고 있다, 권제오름에는 약 22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존재한다.

아라동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주 3일 정도 권제오름을 방문한다. 그는 “이용하는데 불편한 점은 따로 없으며 오히려 산책 길이 잘 형성돼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며 “소나무가 풍기는 솔 냄새가 좋아서 권제오름을 자주 찾는다”라고 전했다.

권제오름은 제주대학교 학생상담센터가 진행하는 ‘숲속 런치&산책 상담’ 프로그램장소로도 사용된다. 나눔의 장, 삼림욕 장소 등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는데, 학생상담센터가 사용하는 숲 상담실인 셈이다.

용눈이오름을 지켜보는 수십개의 눈

용눈이오름은 360여 개의 오름 중 유일하게 분화구가 3개다. 산 가운데가 크게 패어있는 것이 용이 누워있는 모양과 같아서 ‘용와악’으로도 불린다. 용눈이오름에서 만난 제주도민 B씨는 “용눈이오름에 해돋이를 보러 매번 방문한다”며 “그때마다 출입 금지된 길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사람들도 봤다”고 말했다.

용눈이오름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오름 입구에 많은 쓰레기가 방치됐다. 탐방로에는 야자 매트의 철근이 관리되지 않고 방치돼 오름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 야자 매트는 흙길을 편하게 걷기 위한 것으로 많이 밟을수록 매트가 흙에 환원된다. 이때 야자 매트를 고정하는 철근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람들이 철근에 걸려 넘어지거나 탐방로가 지저분해지고 있다.

용눈이오름은 2021년 2월부터 시작해 2년 5개월 동안의 자연휴식년제를 가졌다. 당시 탐방객의 증가로 토양이 훼손되고 흙과 모래가 쏠려 지형이 망가졌다. 또한 식물이 깊게 뿌리를 내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현재는 출입 금지가 풀려 이용이 가능하다. 

용눈이오름에는 중간마다 ‘휴식년제 오름 훼손지 집중 조사구역’이라는 방형구가 설치돼있다. 2021년 용눈이오름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한 제주참여환경연대는 길이 훼손됨에 따라 4구역에 방형구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자연휴식년제가 끝났음에도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용눈이오름을 한 달 간격으로 모니터링하며 회복을 지켜보고 있다.

제주오름의 특별한 쉼표

자연휴식제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일정 기간 동안 오름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탐방을 제한하는 정책이다. 물찾오름, 도너리오름, 문석이오름, 용눈이오름이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된 바 있다. 현재 자연휴식제 적용으로 탐방이 불가능한 오름은 물찾오름, 도너리오름, 문석이오름이다. 

2008년 12월 물찾오름과 도너리오름을 시작으로 자연휴식년제가 처음 실시됐다.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와 환경단체 및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 물찾오름과 도너리 오름을 자연휴식년제 오름으로 선정했다.

훼손지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까지도 도너리오름과 물찾오름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2022년 제주특별자치도 오름 기본계획’의 ‘자연휴식제 시행 오름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산송이가 없어지고 쏠림에 따라 오름의 훼손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도너리오름과 물찾오름의 자연휴식년제가 연장된 이유라고 말했다.

자연휴식년제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는 강하춘 생태문화해설가모임 올레 활동가는 “이제껏 회복해 온 식생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일들이 많다. 탐방예약제나 자연휴식년제에 동의하지만 오름을 찾는 이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오름을 탐방하기 전 기초적 내용에 대해 사전 교육을 받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 제안했다.

더 나은 오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

제주특별자치도는 2월 28일 오름 훼손 관리지표를 개발하고 휴식년제 시행 지침 등 을 마련해 효율적인 오름 보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오름 보전ㆍ이용 및 관리지침 수립 용역’을 마무리 중에 있다고 밝혔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22년에 확정된 ‘제주특별자치도 오름기본계획’에 따라 2026년까지 제주도 오름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나간다. 2016년 ‘제주특별자치도 오름종합계획’에 따르면 오름을 보전하기 위해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함으로써 오름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사람과 오름의 보호와 관리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인력과 예산으로 DB의 구축과 운영이 어려워 추진되지 않았다. 

제주참여환경연대 박유라 사무국장은 ‘오름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오름 탐방 안내판은 기초질서에 관한 내용으로 치중된 반면 오름 보전의 관점에서 기술된 탐방 안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며 “오름 보전을 위한 정책적 접근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소통과 이해를 통한 문화적 접근의 오름 보전정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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