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지만 어느덧 봄기운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계절이다. 3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긴 겨울을 이겨낸 봄이 생동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문명 발달 전 겨울의 혹독함은 생존의 문제였고, 봄을 맞는 일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기도 하였다. 얼어붙은 땅 위로 목련이 꽃망울을 피우고, 여러 생명력 넘치는 화초가 그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려고 한다. 봄이 오는 대학 교정에서는 식물만이 아니라 생명력으로 충만한 신입생들의 활기가 새로운 설렘으로 따스한 온기를 내뿜고 있다. 

대학 생활의 첫봄을 맞는 학생들이 늘 꽃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삶이란 사계절과 같은 희로애락을 겪는 일이다. 어떤 인터뷰 기사에서 본 글귀가 인상에 남는다. 세상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정답’과 ‘비밀’과 ‘공짜’라는 글이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이 없다. 여태껏 정답을 찾는 데 익숙한 교육을 받은 세대에게 ‘정답’이 없다는 말은 곤혹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객관식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객관식 보기에 맞춰서 답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그 객관식 보기 전체가 올바른 답을 제시하고 있는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숱한 문제에는 보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하여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우리가 한 결정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각자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이니 처한 상황에 대한 선택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삶은 정답이 정해진 길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정답을 찾아가는 길이다.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고, 비밀은 공유하면 이미 비밀이 아니니 완벽하게 무언가를 감추며 삶을 살아가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하물며 몇십 년 전의 미해결 범죄도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범인을 밝혀내는 세상이 아닌가. 우리 삶에서 비밀은 뒷담화와 함께 온다. 비밀이라는 포장 속에 누군가를 배제하고 험담하는 음험한 관계가 형성된다. 관계의 형성은 투명하고 진솔한 신뢰 속에서 싹 트는 법이다. 삶은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를 형성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노력에 의한 성취가 아니라 공짜이거나 덤으로 생기는 일이 있다면 더욱 경계하여야 한다. 거액의 복권 당첨이 결국 삶의 행운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드물고, 대형마트의 1+1 상품 구매는 원치 않는 상품의 구매라는 대가를 요구한다. 물질 만능의 세상이지만 불로소득은 언제인가는 사라질 신기루인 것을 믿는다. 삶에서 정말로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그에 합당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 

봄의 교정은 싱그럽다. 싱그러움은 내면의 푸릇함에서 나오는 법이다. 이 대학 교정을 거니는 청춘들이 세상에 없는 세 가지에 매달려 삶을 허비하지 않고 자신의 파릇함을 더욱 푸르게 가꿔갔으면 한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고, 비밀을 만들지 않는 투명한 관계를 형성하며, 노력의 대가에 의한 삶의 성취를 꿈꾸었으면 한다. 청춘은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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