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제주도농아복지관 수어 교육
“수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주민들이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 수어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다.
주민들이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 수어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다.

“수어를 배우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택시기사 A씨는 수어를 배우고 싶어 제주도농아복지관 근처를 기웃거리면서도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수어는 농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어 교육을 2006년부터 꾸준히 실시해왔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침묵의 언어’를 배우는 곳. 그들은 왜 수어를 배우는가.

농인들과 소통하는 복지관 사람들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 소통지원팀 박지환 담당자를 만났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것은 수어 교육과 실버 프로그램이다. 실버프로그램은 청각장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미술, 체조, 보드 게임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인지 능력과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고 정서 안정을 도모한다.

박씨는 “일상적인 부분에서도 수어가 필요하지만 병원에서의 수어 통역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병원에서 따로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직접 제주특별자치도 수어통역센터를 통해 통역 신청을 해야 한다. 수어통역센터는 수어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어 농인들이 수어 통역 서비스를 받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한다. 현재 수어 통역센터에는 12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제주시에는 8명, 서귀포에는 4명이 있다.

박지환씨가 처음부터 수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에는 수어에 대한 관심이 없었지만 점차 배우면서 흥미를 느꼈다”며 “우리가 멀리서 대화할 때는 크게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수어는 말을 하지 않고도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신기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농인들을 만나면서 수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돌아다니다 보면 농인들을 꽤 만날 수 있는데 그분들과 제스처나 몸짓으로 해도 대화는 되지만 이는 정확한 대화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수어를 알고 있으면 농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그분들과 재미있게 대화도 할 수 있다”며 “수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제주도농아복지관, 모두를 위한 복지

제주도농아복지관 이름만 보면 농인들 만을 위한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복지관에서는 농인이나 청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복지관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민들에게 수어를 알리기 위해 SNS나 복지관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운영지원팀, 상담계획팀, 소통지원팀, 문화여가팀, 역량강화팀, 시청각장애 지원팀 등 총 6개의 팀으로 구성돼 있다. 운영지원팀은 복지권 운영에 관련된 전반적인 것을 관리하는 곳이고 상담계획팀은 복지관을 처음 이용하는 분들에 대한 초기 상담계획을 담당하며 복지관을 홍보하거나 다른 기관과의 협력을 맡고 있다. 소통지원팀은 통역 및 수어 교육, 아동 청각장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각 팀은 복지 서비스를 세분화해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청각장애인들 중 글을 쓰기 어려우신 노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건강한 노후 생활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취미 여가 프로그램 등 총 30여개의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또한 청각장애인 지원인력양성 교육과 수어 교육 등을 포함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은 2월 8일 제주도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제주평생교육다모아 홈페이지를 통해 수어 교육 참여자를 모집한 바 있다. 14세 이상의 지역주민이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은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으로 수준을 달리한 맞춤형 수어 교육을 제공한다. 

기초반의 수강료는 3만원이며, 중급반과 고급반은 각각 4만원과 5만원이다. 3월 2일에 시작된 수어 교육은 매주 토요일 총 15번의 교육을 실시하고 6월 22일에 마무리된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외도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시청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지역민들도 이용 가능하며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제주도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어통역사

많은 사람이 수어를 배우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시작조차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학원을 다니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독학을 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글이 수도 없이 올라온다. 

‘수어 어디서 배워요?’ 제주도청에서 수어 통역사로 활동하고 있는 고영산 주무관도 이러한 질문을 자주 듣곤 한다.

고영산씨는 TV를 보던 중 시커먼 사람이 손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을 봤다. 이를 계기로 수어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갔지만 수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우연한 기회로 제주도 농아협회의 소식지를 보게 됐다”며 “그곳에서 수어를 배울 수 있다는 정보를 얻고 전화를 해서 봉사자로 처음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 수어 교육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수어에 관련된 드라마가 흥하기 시작하면서 이를 보고 연락이 오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고영산씨는 “수어 통역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농아인협회가 하는 일을 자체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2021년 3월 제주도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전문 수어 통역사를 채용했고, 고영산씨는 제주도 첫 수어 통역사가 된 이후 지금까지도 제주도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후 제주시청과 서귀포시청도 각각 한 명씩 수어 통역사를 채용했다. 

제주시의 수어 통역사는 제주시의 정책정보를, 서귀포는 서귀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시청의 정책정보를 알린다. 제주도청의 수어 통역사는 도 전체의 정책을 전달하는 등 제주도지사의 입과 귀가 된다.

제주대학교, 장애학생을 위한 지원센터

제주대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의 학습 지원을 위한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주로 사회복지사, 속기사, 일반지원인력, 장애학생 도우미들이 장애학생들을 돕고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행정실에 따르면 현재 6명의 청각장애학생들이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2023학년도 장애학생 지원 사업 추진계획에 따르면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신입생 장애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1:1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했고 장애학생의 원활한 학습 제공을 위해 장애학생 도우미(국가근로자학생)사업과 장애대학생 지원인력 제공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애대학생 지원인력 제공 사업이란 정도가 심한 장애대학생을 대상으로 장애대학생의 이동, 학습, 생활, 편의 제공을 위한 사업이다. 이는 한국장학재단 국가근로장학생을 우선 배정하며 근로학생이 배정되지 않거나 근로학생이 지원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시행한다.

학교 측에서는 센터를 통해 수어 통역사를 섭외하기 때문에 수어 통역사에 대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속기사를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수어 통역사의 의뢰비가 속기사에 비해 훨씬 낮다.

수어의 매력에 빠진 제주도

보건복지부의 2022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등록된 청각장애인 수는 45만5224명이다. 이 중 제주특별자치도에 등록된 청각장애인 수는 6857명이다.

청각장애인은 선천적뿐만 아니라 후천적인 요인으로 청각에 이상이 생겨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와 달리 농인은 청각에 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해 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농인은 한국어가 아닌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수어통역사협회에 따르면 2022년 전국 수어통역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은 총 25명이며 제주는 2명이 수화통역사 자격을 취득했다. 제주는 인구 대비 가장 높은 수어 통역사 취득률을 보였다. 2023년 수어통역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의 수가 41명으로 늘어났다.

제주도농아복지관 관계자에 따르면 수어 통역사 만큼이나 수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어 가능자가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주도 내에 수어 통역사가 몇 명이 있는지 선별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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