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경기도 부천에서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여성 운전자 차량만 골라 금품을 상습적으로 훔친 혐의로 30대 A씨가 구속된 일이 있다. 차량 29대에서 핸드백 등 1천여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은 A씨가 기사화된 까닭은 훔친 금품으로 군주론과 논어 등 철학서 50여만 원 어치를 사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절도 전과 9범인 피의자는 가정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며, 공부를 하고 싶어 철학서를 샀다고 한다. ‘직권남용 사기미수’ 혐의로 고발된 민간인 비선 실세 때문에 헌정이 중단될 지경에 이르고 보니, 군주론과 논어를 샀다는 절도범이 새삼 달리 보인다.

도둑하면 공자 당시의 도척이라는 인물이 생각난다. 중국에서는 도둑의 대명사로 불리기 때문이다. 장자(莊子)는 남화경(南華經) 도척 편에서 공자가 도척을 가르치러 갔다가 오히려 가르침을 받고 돌아왔다는 우화를 실었다. 여기서 나온 유명한 말이 “좀도둑은 잡히지만 큰 도둑은 제후가 된다[小盜者拘 大盜者爲諸侯]”이다. “네가 믿고 있는 도리라고 하는 것은 제 정신을 잃고 허둥대기만 하여, 교묘하게 남을 속이고 거짓으로 일을 꾸미는 데 쓰일 뿐이므로 올바르고 참된 것이 될 수 없다.”라는 따끔한 도척의 말에 공자는 두 번 절하고 잰 걸음으로 도망쳤다고 장자는 전한다. 

남화경 거협 편에서는 아예 대놓고 풍자한다. 부하가 도둑에게도 도리가 있는지를 묻자, 도척은 ‘어디엔들 도리가 없겠느냐(何適而無有道耶)’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훔치러 들어 갈 때 재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아는 것이 뛰어남[聖]이고, 들어갈 때 먼저 들어가는 것을 과감함[勇]이고, 도망쳐 나올 때 뒤에 나오는 것이 올바름[義]이고, 성공할지를 아는 것이 앎[知]이고,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인간다움[仁]이다[夫妄意室中之藏聖也 入先勇也 出後義也 知可否知也 分均仁也]. 유학에서 추구하는 다섯 가지 윤리준칙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도둑의 도리로 바꿔놓은 것이다. 도척의 입을 빌려 “어디엔들 도리가 없겠느냐”라고 말하는 장자의 풍자는 위선자들을 상대로 한 준엄한 비판이다.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뽑는 일은 대의민주주의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권리이면서 의무이다. 조만간 학생자치기구의 일꾼을 뽑아야 할 우리 학생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렇게 뽑힌 이들은 나를 대신해서 성가신 일을 해 줄 고마운 이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일꾼으로, 때로는 지도자로 불린다. 하지만 어떻게 불리든 나를 대신해주는 공인(公人)일 뿐이지, 우리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나 지배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자치기구의 일꾼으로 나와 준 고마운 후보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공적인 영역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역사의 준엄한 비판을 두려워해야 할 공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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