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시 삼도동 로베로호텔 앞에 위치한 북두칠성 제삼도 비석. 이 비석은 예전에 있던 칠성대가 다 사라져서 이 터를 알기 위해 세웠다.

11월 1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원도심 일대에서 ‘탐라의 별빛으로 찾아가는 원도심의 역사와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탐라문화연구원(원장 김동윤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국가사업인 인문도시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원도심 일대는 탐라국 시대의 자취가 남아 있어 옛 제주인의 삶을 알아볼 수 있는 장소다.

해설은 강문규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맡았다. 참여 인원은 약 20여 명이었으며, 일반 도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견학 코스는 관덕정마당에서 집결해 제주목관아,  창업보육센터(옛 자혜원), 김석익선생 옛집, 오현터, (구)제주향교, 북성교, 관덕정마당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또한 코스 중간중간마다 칠성도 비석도 보여줬다. 칠성도 비석은 옛 탐라성(현 원도심 일대)이 북두칠성을 기반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설명하는 비석이다.  기자도 이번 행사에 동행해 원도심 일대의 중요성과 의의를 알아 봤다.

이번 답사 출발지는 제주목관아였다.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 제주의 정치ㆍ행정ㆍ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관아 옆에 있는 관덕정은 호남 지역에서 가장 큰 정자이며 국가에서 경사가 생겼을 때 기뻐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강문규 소장은 제주목관아가 세종 때 소실된 이야기를 하면서 “태종 때 제주 지역을 원래 다스리던 호족들이 태종에게 당할 것을 우려해 제주 지역을 반납하면서 태종이 좌도지관과 우도지관으로 작위를 받아 제주를 다스리고 있었다”며 “그런데 세종 때 강력한 중앙집권통치가 시작돼면서 그 작위를 뺏기면서 저항의 의미로 불을 지른 것으로 유추된다”고 설명했다.

일제 시대에 들어서서 관덕정은 도청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제주목관아가 필요 없어진 일제는 대부분의 제주목관아 시설을 파괴했다. 제주목관아의 원형이 훼손돼 있어 90년대 초에는 제주도가 30억원을 들여 제주목관아 터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앙 정부에 제주목관아의 중요성을 피력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견학 일행은 제주목관아에서 옛 자혜원 터가 있던 창업보육센터로 이동했다. 자혜원은 1910년에 설립된 제주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다. 자혜원은 해방이 되면서 제주도립병원과 제주대학병원으로 이름을 변경해 운영했으며, 제주대병원이 현 위치로 옮겨진 현재는 창업보육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김석익 선생 옛집이었다. 김석익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원도심 일대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제주목관아 밖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칠성대를 보고 제주목관아보다 훨씬 큰 범위로 탐라성이 도축돼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탐라성을 범위를 찾는데 주력했다.

강문규 연구소장은 “김석익 선생은 1923년 칠성대에 설명한 글을 탐라지에 실었다”며 “다만 일제가 민간인에게 지적도를 제공하지 않아 지도가 아닌 말로만 설명돼 있어 아쉽다”고 전했다.

이후 점심을 먹고 옛 오현고 터ㆍ북성교 등과 뿔뿔이 흩어진 칠성대의 위치를 알리는 비석들을 보고 관덕정으로 돌아왔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강순희(일도2동, 60세)씨는 “제주도에 살면서 잘 몰랐던 원도심 일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자주 접해서 제주에 몰랐던 곳을 알아야 도민으로서 자긍심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윤 탐라문화연구소장은 “이 프로그램은 인문도시지원사업 중 체험사업에 하나”라며 “도민들이 원도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원도심 재생에 필요한 전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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