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가장 먼저 생긴 대학은 12세기경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이며 법학이 유명했다. 그와 쌍벽을 이룬 것은 프랑스 파리 대학이며 이곳은 신학이 유명했다.
 당시 대학생들의 공부 과목은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학, 천문, 음악 등 7가지였다. 그 중 문법, 수사학, 논리학을 마치면 대학 졸업장을 받고 산수, 기하, 천문, 음악을 마치면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학위는 법률, 의학, 신학 셋 중 하나를 택해 공부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신학이 가장 어렵고 권위 있는 학문으로 간주됐다. 이는 당시 기독교가 절대적 권위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로냐 대학이 유명해지자 유럽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학교 주변에서 방을 얻어 생활했다. 그러자 주민들은 방세를 대폭 인상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조합을 만들어 ‘만일 들어주지 않으면 모두 다른 도시로 가버리겠다’고 볼로냐 시 당국에 방세 인상 금지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과는 학생들의 승리였다.
 다음으로 학생조합이 문제 삼은 것은 교수들의 수업내용이었다. ‘학생들의 동의 없이 교수 마음대고 휴강하지 말라’, ‘강의시간을 정확히 지켜달라’, ‘교수는 강의를 대충하지 말라’, ‘어려운 문제라고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넘어가지 말라’, ‘폭넓은 강의 내용을 원한다’ 등 학교 측에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학생들이 이런 요구를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책 값이 엄청 비쌌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활자로 찍힌 책이 없고, 책이란 모두 손으로 직접 베껴 쓴 필사본이었다. 인쇄본이 나오기 전 책은 매우 희귀하고 값이 비싸기 때문에 중세 도서관에서는 책을 선방이나 책상 위의 가로지른 막대에 묶어 놓았다. 책 한 권 값이 교수 한 사람 연봉의 절반 가량이었으니 학생의 신분으로 책을 산다는 것은 꿈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열심히 받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교수들이 학생들이 원하는 만큼 충실히 강의를 하지 않은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학생들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등교 거부, 수업, 거부 등 단체행동을 불사했다. 당시 대학은 오늘날처럼 재단이나 국가보조 없이 순전히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단체행동은 곧바로 대학의 운영과 교수의 생계를 위협했다. 때문에 교수들은 학생조합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학생조합의 힘이 커지자 교수들도 조합을 만들어 대응했다. 이 교수 조합은 콜레지아(collegia)라 부르고, 학생조합을 유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라 불렀다. 오늘날 단과대학을 뜻하는 칼리지(college), 종합대학을 뜻하는 유니버시티(university)의 어원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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