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정치(代議政治)의 근간이 뒤흔들렸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청와대에 집중되었던 국정농단 의혹은 교육문화수석 인사비리와 대학부정입학 및 부실학사관리 의혹을 타고 교육부로 옮겨 오고 있다. 하기는 지난 7월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공무원 정책실명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민중은 개ㆍ돼지로 취급하면 된다.”고 망언할 때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다. 대학지원과장, 청와대 교육비서관실 파견, 지방교육자치과장을 거쳐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한 지 4개월만에 했다는 망언은 국정농단 피의자의 딸이 했다는 “돈도 실력,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망언과 일치한다.

개ㆍ돼지하면 논어 위정(爲政) 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자유(子游)가 공자에게 효(孝)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요즘 효(孝)라고 하는 것을 보니 돌봐드리는 것[養]을 위주로 하는데, 개나 말도 돌본다고 할 수 있으니[至於犬馬 皆能有養] 공경함[敬]이 없다면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하겠느냐” 공자는 양체(養體)의 효와 양지(養志)의 효를 구분한다. 양체의 효는 부모의 몸을 돌보는 것이고, 양지의 효는 부모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몸만 돌보는 것은 부모를 개나 말로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너무 당연하지만 그래서 자주 잊는다.

이 구절을 두고 정조(正祖)는 신하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기서 ‘견마(犬馬)에 이르러서도 모두 길러줌이 있다’고 한 것을 옛 주석에서는 ‘개는 집을 지키고 말은 짐을 져 나르니 모두 노동을 해 사람을 봉양한다. 저들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공경함[敬]일 따름’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안(何晏)에 이르러 비로소 아들이 그 어버이를 봉양하는 것과 사람이 견마(犬馬)를 기르는 것으로 비유하기 시작했는데, 주자(朱子)는 이 말에 따랐다. 부모는 지극히 높고 귀하고 견마는 지극히 낮고 천하다. 지금 천한 견마로 존귀한 부모를 비유했으니 이러고도 성인의 말은 박절하지 않은 것인가?” 학자 군주 정조는 공자와 주자의 뜻을 알면서도 공경함[敬]이라는 한 글자를 강조해서 이렇게 되물었다.

지난 국감에서 한 야당의원은 국내 고등교육기관의 80%를 차지하는 사립대의 족벌채용, 여의도 면적의 150배에 달하는 부동산 소유 등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문제는 결국, 교육부가 정책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3 시절 고작 17일을 등교하고도 국내 유명사립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교육당국과 교육현장이 ‘99%의 민중을 개ㆍ돼지로 보았음’을 반증한다. 문제는 철학이 아니라 태도의 부재이다.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대학과 직업훈련소를 구분하는 기준이다. 아직도 취업이 대학의 명운을 가른다고 생각하는 대학당국자가 있다면 이참에 스스로에게 준엄하게 묻기 바란다. “나는 교육자로서, 학생을 견마가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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