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즉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법이라고 하여, 백성들에게 정치가 미치는 막강한 힘을 일찍이 간파하였다. 정치는 백성들을 살리는 훈훈한 바람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망치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는 정치가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다른 어떤 영역들보다 중요한지,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한 언론의 폭로로 시작된 현재 대한민국 정치 상황은 단순히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과 개헌 논의에까지 이르고 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국민들은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며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는 고난 속에서 일구어낸 민주화 역사를 되돌려버린 데서 오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이자, 그것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기인하고 있다.

처음 절망과 분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던 국민들은 절망과 분노를 넘어 촛불의 힘과 의미를 알게 되었고, 그 힘과 의미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첫째, 광장으로 모여 각자의 분노와 슬픔을 모을 줄  아는 힘이다. 한 개의 촛불은 미약하지만 그 촛불들이 모여 촛불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힘은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공동체 전통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둘째, 우리는 결코 이러한 분노와 슬픔을 그저 내뱉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해학과 풍자로 격을 높여 한 차원 달리함으로써 예술과 문화로 승화시킬 줄 안다는 데 남다른 점이 있다. 슬픔과 한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마는 이처럼 한(恨)을 승화시키는 예는 보기 드문 일이다.

셋째,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나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다. 경찰 버스에 꽃 스티커를 붙이고 다시 떼어내는 마음은 의경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려는 배려이며, 촛불 웹을 만들어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은 역할은 다르지만 미래 청사진을 함께 하고자 함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새롭게 느낀 큰 힘이다.

우리는 왜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나오는지, 왜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촛불을 들고 나왔는지 알고 있다. 부패한 정치와 위태로운 제도들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함이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함이며, 보다 나은 세상을 열어가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임을.

유학에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강조한다. 이는 스스로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즉 자기 자신을 먼저 수양하고 난 후에 백성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촛불을 든 어린이와 학생들이 맞이할 미래의 정치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강조한 ‘애민(愛民)’과 ‘봉공(奉公)’의 정신을 지닌 사람들이 펼쳐가길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