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정성과 힘’을 뜻하는 용어인 최선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운동경기 등에서 졌지만 잘 싸웠을 때도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으로 격려를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난 최선을 다했어’라는 말로 자기위로를 하기도 한다. 이렇듯 최선은 언제나 우리에게 위로와 핑계가 되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맥주 한잔을 마시며 지인과 얘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제는 ‘나의 현재 위치’. 단순 주제만 본다면 ‘학생이 무슨 위치와 신분이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제의 핵심은 현재의 역할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는가 였다.

지인은 내게 이런 얘기를 해줬다. 현재 제주대학의 학생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이다. 1그룹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며 단순히 학교생활 하는 사람들. 2그룹은 무엇을 해야 할 지는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한 노력은 하지 않는 사람들. 3그룹은 꿈도 있고, 생각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노력이 최선인줄 아는 사람들. 4그룹은 자신의 꿈을 위해 갖고 있는 모든 걸 쏟아 붓는 사람들. 그러면서 현재 제주대학교 내에 1, 2그룹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3 ,4그룹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이 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근묵자흑(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결론은 4번 그룹안에 속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가만히 앉아 다시금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가? 아니면 ‘최선을 다했다’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통해 자기 위로를 하는지 말이다.

몇몇 학생들은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자신이 노력 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핑계를 둘러대곤 한다. “교수가 못 가르치니까 수업을 들을 수가 없다”며 자신의 노력부족은 생각지 않고 교수들에게 책임을 넘기곤 한다.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울 좋은 핑계일 뿐 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기 전 내가 얼마만큼 노력을 했고 투자를 했는지 살펴봐라.

논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좋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스승이 아무리 훌륭해도 배우는 제자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승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제자의 자질과 품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아무리 뛰어난 스승을 만나더라도 학습(學習)에 있어 학(學)만하고 습(習)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졸업하는 학생들은 이제 곧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졸업생들이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재학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기를 추천한다.

진정으로 흘린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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