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나지막하지만 단호한 선고가 내려졌다. 이렇게 해서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심판 사건은 92일간의 종착점을 맞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다음 날인 3월 11일에는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20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 날의 집회를 마지막으로 지난 해 10월 29일부터 시작된 이래 134일간 누적인원 1600만 명이라는 역사적 기록이 ‘촛불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친박단체가 모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 주최로 ‘제1차 국민저항운동 태극기집회’가 열렸다. 전날 같은 단체에서 주최한 19차 집회에서는 시위 참가자 가운데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진정되는 국면이지만 탄핵 반대집회의 열기는 탄핵 선고 후 56시간만에 퇴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 주변으로 옮겨간 듯하다.

탄핵 후 십여 일이 지나는 동안 정국은 격동을 겪고 있다. 3월 21일로 예정되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에 대해서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대통령 탄핵 선고 후 6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는 대통령 선거는 5월 9일에 실시될 것으로 확정되었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한 각 당내 경선의 후보들은 앞 다투어 출마의사를 표명하는가 하면, 유력 주자로 거론되었던 인물의 불출마 선언도 이어졌다. 이러한 선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개혁 또는 통합의 의지 표명이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격랑은 별난 일이 아니지만, 탄핵을 초래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과 탄핵으로 초래된 분열을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은 탄핵정국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지난 134일간 광장에 울려 퍼지던 대한민국 주권자들의 요구는 헌법재판소에서 밝힌 보충의견에 명시되어 있듯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본다면 대통령의 파면은 보수적 가치의 몰락은 물론, 진보적 가치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고…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것”, 곧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장미대선을 앞둔 주권자로서 우리는 누가 탄핵 이후의 국가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성실한 지도자인지를 잘 판단하여 탄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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