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종교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 퍼져있다. 기독교는 거의 모든 나라에 퍼져 있으며 불교와 힌두교는 80여 국가에, 유대교는 110여개 국가에, 이슬람교는 160여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종교가 다양화되고 세계 곳곳에 퍼져있어 그에 따른 분쟁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종교가 한 나라에 공존하고 있으나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유일의 나라이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일어난 아프리카 최대 인구국인 나이지리아의 이슬람교와 기독교간의 종교분쟁 유혈사태는 2000여명 사상을 냈다. 나이지리아 인구의 절반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40% 정도는 기독교인이다. 인도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갈등이 북부 아요디야 유적지를 둘러싸고 500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다. 아요디야는 힌두교 영웅신 라마의 탄생지로 힌두교도들이 성지로 여겨온 곳이다. 그러나 1528년 이슬람세력인 무굴제국이 이곳을 점령한 뒤 바브리 이슬람사원을 지어 양측간 성지 연고권을 둘러싼 분쟁이 시작됐다. 지난 2003년에는 인도 뭄바이에서 연쇄 차량폭탄 테러로 2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종교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은 종교를 각기 달리하는 여러 민족을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이와 달리 하나의 민족이 여러 종교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분쟁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민족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비록 우리보다 다양성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인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단일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역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가 불교와 유교를 처음 수용한 시기는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할 때이다. 고려는 불교를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삼았다. 이런 동양 고전종교는 아무 분쟁 없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었다. 즉 유교문화와 불교문화와 무속 전통과 아울러 우리 사회 전통문화의 한 축을 형성한 셈이다. 하지만 서양 종교(기독교 및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충돌이 있었다. 한국 그리스도교 선교의 선발 주자였던 천주교는 전통문화와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충돌해 약 1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적 세계관의 차이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광복 후 미군정은 향교재산관리법과 사찰령 등 종교 관련 법규의 개폐와 일제하에 있었던 종교 관련 적산의 배분,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공휴일 제정 등을 통해 기독교 위주의 종교정책을 시행했다. 이러한 기독교 위주의 종교정책은 제1공화국 때까지 유지됐다. 그 후 월남전 참전을 계기로 불교가 군종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1975년에는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들 종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정책적인 면에서 혜택을 받는 공인교, 즉 공인된 교화단체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종교는 크게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로 나눌 수 있으며 종교가 다원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학자들은 우리나라가 분쟁 없이 여러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로 첫째, 한국인들의 공통된 종교 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1997년에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의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종교를 믿는 이유로 43.7%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또한 종교 단체에 소속되는 것보다는 개인적으로 나름대로의 신앙을 갖는 것을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들이 종교를 개인의 문제로 여기기 때문에 종교로 인한 단체행동이 일어나지 않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종교의식의 복합성이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집안의 남자 어른이 주도권을 가져야 집안 질서가 선다”, “남편이 하는 일과 아내가 할 일은 마땅히 구분되어야 한다”, “자식은 자기 생각보다 부모 뜻에 따르는 것이 온당하다”는 등 유교적 성향을 묻는 물음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이 각각 63.5%, 62.5%, 42.5%로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다’는 응답이 다소 많았지만, 대체로 전통적인 유교적 신념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이 많았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의 종교의식에는 여러 종교적 신념이나 교리가 중첩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비록 어느 한 종교를 믿는다고 고백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종교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른바 중층적 혹은 복합적 종교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간 혹은 종파간 갈등과 분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전쟁이나 대규모적인 사회적 혼란이 없었다는 것은 한국인들의 종교적 관용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관용성의 배후에는 단일 민족이나 단일 문화권과 같은 개별 종교보다 더 큰 범주와 복합적 종교 의식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신광철(한신대 종교학과)교수는 논문을 통해 “대부분의 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천주교, 개신교 등 서양종교와 유교, 불교 등의 동양종교가 서로 대등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어느 종교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 그 뿌리를 다른 종교들이 혼재하는 현재적 상황은 항상 종교간의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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