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슴에 성호를 긋던 바람도
 스치고 지나가면 그뿐
 하늘의 구름을 나의 애인이라 부를 순 없어요
 맥주를 마시며 고백한 사랑은
 텅 빈 맥주잔 속에 갇혀 뒹굴고
 깃발 속에 써놓은 사랑은
 펄럭이는 깃발 속에서만 유효할 뿐이지요
 
 - 박정대의 시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단편들』)중에서

 지난 일요일에 우당도서관에 갔다. 이사를 하기 전 주로 가던 도서관이다. 군 복무 기간을 빼고 이십대에 주로 머물던 곳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열람실에는 공무원 시험이나 취업 준비 공부를 하는 대학생들이 많다. 나도 덩달아 소방관 시험을 보겠다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대개 도서관 종합열람실 시집 코너 앞을 서성이곤 했다.

책을 읽다 답답하면 도서관 뒤에 있는 별도봉에 오르곤 했다. 별도봉은 나의 어린 시절 놀던 놀이터이기도 하다. 스무 살 무렵, 책을 덮어두고 별도봉에 올랐다. 나는 지형을 잘 알고 있기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풀숲으로도 곧잘 들어가곤 했다. 숲은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빛깔을 내게 전해줬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낮잠을 잘 수 있어서 청춘이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아이다호’는 청춘에 대한 영화다. 리버 피닉스가 연기한 마이크는 기면증을 앓고 있었다. 곽지균 감독의 영화 ‘청춘’에서도 김정현이 연기한 수인은 기면증으로 아무데서나 팍 쓰러지곤 한다. 이 두 영화를 청춘의 영화로 꼽는 걸 보면 내 청춘의 기간이 얼추 나온다. 이 두 영화에 나오는 기면증이 나는 청춘의 병이라 여겼다. 시인 박정대는 나보다 아홉 살 많지만 그의 정서가 나와 잘 맞는 것 같았다. ‘아무데서나 나도 팍 쓰러지고 싶었다’(「아이다호」)는 박정대처럼 나도 아무데서나 팍 쓰러지고 싶었다.

 IMF가 모든 의제를 덮어버리던 시절이었다. 나는 시를 동경하면서 정작 시를 열심히 쓰지는 않았다. 가방에는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들어 있었다. 진이정, 여림, 이연주 등 요절한 시인들을 편애했다. 시인이라면 요절해야 하는 게 시인의 코스인 것처럼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기형도나 진이정보다 오래 살게 되면서 그런 생각은 치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문학사상》,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 등의 문예지를 보면서 언젠가는 그 문예지에 내 시를 발표할 날을 꿈꾸곤 했다. 하지만 꿈만 꿨다. 그러니 지금은 무명시인으로 그런 선망의 문예지에는 내 졸시를 실을 일이 거의 없다.

그 무렵 세계사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시선은 내게 어떤 처방전 같은 시집들이었다. 함민복의 『자본주의의 약속』, 진이정의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강연호의 『비단길』 등은 빈둥대는 시절에 위안이 되어 주었다. 나만 이런 시를 흠모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근사한 시의 세계를 만든 시인들의 존재 자체가 내게 큰 자장이 되어 주었다. 그 이름들을 형이나 누나 이름 부르듯 호명하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렸다.

지금 나는 시를 쓰고 있지만 동경하던 문예지에 단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못했다. 꿈만 꿨지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리라. 그리고 나는 두 권의 시집을 냈지만 내가 주로 읽던 시집이 출간된 시선에 끼지 못했다. 시를 꿈꾸되 무명 시인으로서의 삶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시들이 주로 실려있던 문예지나 시선에 내 시가 없는 이 간극은 넓고 깊다. 이제 청춘이라 부를 수 없는 나이로 접어들면서 나는 이 꿈을 의심하는 중이다.

꿈을 꾸면 꿈만 꾸게 된다.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 ‘가장 보통의 존재’처럼 우리는 대개 가장 보통의 존재로 살아야 하는 걸 간과해왔다. 박정대의 시집 『단편들』은 내가 꿈을 꾸게 만든 시집 중 한 권이다. 양조위를 닮은 박정대. 왕가위의 영화 ‘동사서독’ 같은 나날 중에서 우울한 시집이 오아시스 역할을 한 건 불행이었을까.

박정대는 청춘을 통해 삶의 비의를 보여준다. 시의 세계는 축축하고 암울하다. ‘가습기 같은 영혼’(「단편들」)들이 창궐한다. 쉰을 넘기지 못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기형도 유고시집의 해설 끝에 이렇게 썼다. “나는 누가 기형도를 따라 다시 그 길을 갈까봐 겁난다. 그 길은 너무 괴로운 길이다.” 그런데 어디 시만 그러한가. 시 쓰는 일은 삶을 쓰는 일이다.

시를 쓰고 있기에 시집을 추천하지만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은 것 같아 마뜩하지 않다. 박정대는 첫 시집 『단편들』을 내고 4년 뒤에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를 낸다. 골 득실차로 따질 정도가 아니다. 노는 리그가 다르다. 청춘은 꿈을 꾼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래도 나는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다면 그때처럼 시집을 읽으며 허송세월을 보낼 것이다. 몇 해 동안 소방관 시험을 준비하다 결국 낙방해 먼 친척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 시를 쓰던 청춘을 회상하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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