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카드게임에 셔플링(shuffl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동일한 종류의 카드가 한곳에 모이지 않도록 고루 섞는 것을 지칭하는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영역에서 셔플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디지털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각각의 전통적 매스미디어가 갖고 있는 고유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기능이나 특성들을 융합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존의 매스미디어의 영향력과 질서를 재편시키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혁신적 진보는 여러 가지 이익도 가져다주지만, 인터넷을 통한 음악 저작권 침해, 사이버 음란외설, 프라이버시 침해 등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 시키고 있다. 이처럼 상충되는 기본권들의 중재에는 적잖은 개인적·사회적 노력과 고통이 수반된다.

  안타깝게도 뉴미디어 이용자들의 시각과 의식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용자의 자유권 행사가 자신에게는 특권이 되지만 남의 권리에는 치명적인 침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MP3 파일로 압축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네티즌사이에 무단으로 공유되고 있어, 좋아하는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 CD로 저장하고 자유롭게 언제든지 음악을 즐기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가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음악 파일의 공유가 잘못된 것이냐 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 노동과 창작의 결과인 음악은 가수나 음반 제작자들에게는 존립의 근거가 되는 절실한 권리인 것이다. 음악도 무형의 재산이라는 인식과 함께 네티즌들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음악파일의 공유, 즉 그러한 개인의 자유권 행사가 창작자나 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자유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저작권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정신적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권리가 보장되었을 때만이 저작자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다. 창작자 및 저작자들에 대한 제도적, 법적 보호장치의 마련 없이 사회는 좀더 수준 높은 창작품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사이버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현실법의 엄격한 적용은, 자칫 기술의 진보를 저해할 소지가 있다. 사회적 분쟁을 다루는 기준이나 현실법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정당한 이용자들의 권리를 축소하거나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을 위축시킬 수 있는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 아직까지 이용자의 권리와 저작자의 권리사이를 조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디지털화에 따른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정비가 없거나 미비한 현실이다. 따라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저작권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이용자들의 정당한 자유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법적, 사회적, 더 나아가 기술적 기준의 도출이 절실히 필요하다.

  카드가 셔플링 되었을 때 그 게임에 그저 휘말려들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권을 갖고 있으며 나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전체적인 환경 파악이 중요하듯,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 준 편의를 누리는데 급급하기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더 나아가 더불어 사는 다른 사람의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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