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
정감어린 선율과 노랫말이 귀에 익숙한 노래 ‘섬집아기'가 또다시 뜨거운 논쟁거리로 도마 위에 올랐다. 제주도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지난 해 북군 구좌읍 종달리 해안에 섬집아기 노래비를 건립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도내 문화단체를 비롯한 도민들의 거센 반발로 사업 추진을 미루어 오고 있던 실정이었다. 그러나 도는 이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달 14일, 음악협회 도지회와 문화예술재단 공동주최로 사업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도는 노래비 건립배경에 대해 “작년 7월 섬집아기 작곡가인 고 이흥렬씨의 아들인 이영조 교수가 풍광 좋은 제주에 노래비 건립을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데다 새로운 관광명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문화계 의견을 듣고 수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달 중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공사 착공을 추진하는 한편, 내년에도 관련 예산을 확보해 음악협회에서 조사한 감수광, 삼다도소식, 살짜기 옵서예, 오돌또기, 새싹들이다 가운데 적당한 노래를 선정, 노래비 건립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제주민예총(지회장 김상철)은 ‘제주도는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 계획을 취소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달 24일에 ‘섬집아기 노래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은 지난 6일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을 철회해야 하는 여섯가지 이유'라는 성명을 통해 “섬집아기 노래는 제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사업추진과정에서의 도민 의견수렴 부족, 작곡가 이흥렬씨의 친일행적, 차후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혼란 등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노래비 건립 사업은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달 22일에는 제주작가회의가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을 단호히 반대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노래비 건립이 강행될 경우 전국의 문화단체들과 연대한 반대운동에 나설 것"임을 밝혔으며, 지난 9일에는 광복회 제주도지부에서 ‘민족정기 선양에 저해가 되는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은 절대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도청 및 언론 기관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서도 섬집아기 노래비 설립에 관한 반대 의견들이 게재되고 있다.
그렇다면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을 둘러싸고 이토록 많은 이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섬집아기 노래비 설립으로 도는 1억5천 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소요할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도민들의 의견을 묻고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또한 노래 선정과 건립장소 선택에 있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 역시 반영하지 않았다. 노래비 건립 사업이 여러 문제를 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선 ‘섬집아기'는 제주도와의 연결고리를 찾기 힘든 노래이다. 노래 전반에서 제주의 전통, 혹은 제주인의 정체성을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사에 등장하는 ‘굴, 섬그늘'과 같은 단어는 제주의 자연환경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정 지역에 노래비를 건립한다는 것은 그 노래와 지역간에 유기적이고 상호적인 관계가 전제되어 있을 때 그 의의가 성립될 수 있다. 도의 주장대로 관광객 유치를 위한 방편의 일환이라면 굳이 노래비가 아니어도, 섬집아기라는 노래가 아니어도 방법은 다양하다.
또한 최근 섬집아기의 작곡자 이흥렬의 친일행각이 드러나면서 노래비 건립 반대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해녀항쟁의 발생지인 구좌읍 종달리에 친일파 작곡자의 노래비가 세워진다는 것은 모순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섬집아기 노래비 건립사업. 도는 문화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도민과 관련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사업 강행을 내세우기에 앞서 도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진중한 검토과정을 통해 진정 도를 위한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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