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는 여유로운 가을이다. 학생들이 책을 읽기 좋은, 아니 책을 읽어야 하는 시기이다. 왜 꼭 책을 읽어야만 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이 지당한 것이라 여겼기에 ‘왜’ 그리고 ‘꼭’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난감했었다. 북송 왕안석이 ‘권학문’에서 그 답을 하고 있다. “독서는 비용이 들지 않고, 책을 읽으면 만 배의 이익이 생긴다. 사람들의 재능을 밝혀주고, 책은 군자의 지혜를 더해준다. 가난한 자는 책으로 부유해지고, 부유한 자는 책으로 귀해지며. 어리석은 사람은 책으로 현명해진다. 독서로 영화를 누리는 것은 봤어도 독서로 타락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인간의 신체 유지에 빵과 밥이 필요하다면, 독서는 정신[마음]에 필요하다. 위인 중 독서를 중시하지 않은 이가 없고, 정신적 성장을 추구한 사람들은 독서를 강조하였다. 독서는 모든 교육의 토대로, 뇌 발달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인지와 정서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학습 기반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더하여 어린 시절의 독서 경험은 성장기 이후 교육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준다.

독서의 강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차이가 없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산책 시간을 엄수하던 칸트가 산책시간을 잊은 것도 루소의 <에밀>에 몰입하였기 때문이고,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하였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문구는 인간다움의 형성에서 독서가 필수임을 표현한 말이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한 데카르트의 말도 양서(良書)의 가치를 드러낸 것이다. 이와 같이 회자(膾炙)되는 문구에서 독서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 수 있다.

스스로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 칭하였던 청장관 이덕무는 책읽기의 이로움을 네 가지로 들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 때에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에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 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이덕무는 책을 단순한 대상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대하듯 하였고 책으로 이불삼고 책으로 바람을 막으며 책 속에서 세상을 알았다.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도 학교생활기록부로 독서를 장려하지만 억지로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수시를 준비하는 소수를 빼고는 책을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은 문화가 되었다. 책보다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매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쉽게 정보를 얻지만 자기화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취업을 고민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취업과 무관하게 보이는 독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물질 가치가 삶의 중심에 자리하면서 당장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것에는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독서는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해주는 본질적인 행위이자 고통과 괴로움을 극복하여 희망을 갖게 하는 가치론적 행위이다. 독서의 본질과 자신의 독서 행위를 성찰하는 것이 메타(meta)-독서이다. 입시와 성공의 수단을 넘어 삶의 가치적 측면에서 독서하고, 그 과정에서 독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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