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 언 기 자

‘긍정적이다, 성실하다, 행복하다’. 나의 수식어이자 자랑거리이다. 이것들이 크게 부풀었을 때 가끔 무언가 다가와 툭 터뜨리고 간다. 비상하던 나는 추락할 수밖에 없고 부정적이고 게으르며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 낙하산은 물론이거니와 신이 썩은 동아줄을 내려준다 하더라도 잡을 힘조차 없다. 긴 시간을 올라 짧은 시간 만에 떨어지기 위해 노력했던가? 단지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었을 뿐 결코 남들보다 더 많이 떨어지기 위해 쉬지 않고 오른 것은 아니다. 이 절망 속에서 삶의 권태를 느꼈다.

권태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간단히 설명하자면 ‘무가치의 상태’가 가장 적절하다. 하는 일에 대해 의미를 부여할 수 없고 결코 능동적일 수 없는 상태다. ‘과연 이런 상태를 정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인간으로서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 ‘나는 존엄한가?’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역시나 정답을 찾지 못한다.

“인생이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저명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그의 말에서 찾고자 하는 답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주체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성취해야 하고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한다. 하지만 이것을 성취하고 가졌을 때 행복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새 신발을 신고 혹여나 상처가 날까 얼마나 조심히 걸었던가. 하지만 지금 그 신발은 얼룩덜룩 까매져있을 뿐이다. 그러고는 또 다른 새 신발을 원하고 있다. 이렇게 욕망은 변화하며 그 뒤의 권태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권태의 존재를 인정하며 게임에서 말하는 ‘세이브 포인트’를 지정하기로 했다. 세이브 포인트의 목적은 ‘뒤 돌아봄’에 있다. 같은 권태때문에 매번 나락에 빠지기보다 중간에 잡을 동아줄 위치를 알아둔다면 두려움에 맞서 자립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을 해치는 걸림돌은 직접 치워야할 뿐 타인이 치워준다면 앞으로 나아가다 결국 비슷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돼있다. 돌을 뛰어넘든 발로 차 치우든 극복을 해야만 다음 세이브 포인트에 도달하고 결국 자신이 희망하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권태를 느끼며 토악질을 하던, 자신의 부족으로 치부했던, 자신을 좀 갉아먹던 고통스러운 날들이 얼마던가. 그렇지만 이러한 지난날들이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 성장은 고통(苦痛)과 인내(忍耐)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낮에 빛나지 않는다고 별이 아니지 않잖아? 곧 밤이 올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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