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정말 이상한 나라다.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횡포가 매일매일 언론을 도배하고 그걸 가리키는 ‘갑질’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어 버렸지만 정작 이런 비상식적인 작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은 없다. 누군가의 인권을 유린하고 공적으로 주어진 지위와 힘을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는 것은 ‘갑질’이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해 준다. ‘나의 문제’가 아닐 때 방관하는 우리들 모두가 ‘갑질’의 공모자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을’의 입장에서 ‘갑’의 횡포에 분노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갑’이 되고 싶은 은밀한 욕망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문제는 ‘갑질’로 지탄받는 개인에게 욕설과 분노를 퍼부으면서 스스로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갑’에 대한 열망을 은폐하고, 그럼으로써 ‘갑’의 횡포에 은밀하게 공모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에 있다.

‘갑질’에 대한 공모는 개인들의 무의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는 ‘제도적인’ 공모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갑’의 위치는 제도에 의해서 주어진다.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는 우월한 사회적 위치에 의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질’을 개인적인 일탈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는 ‘갑’의 지위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노골적인 ‘갑질’의 공모자로 만든다. 누군가의 일탈로 생겨난 사달이 자신들의 지위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골적인 공모는 조직과 제도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갑질’을 은폐하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면제해 준다. 한편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 대해 비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점잖게 조직의 안정성을 들먹이며 미적지근한 대응을 ‘중립성’으로 포장한다. ‘갑’의 위치를 공유하고 있기에 이 중립성이 약자들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깨닫지 못한다. 피해자들보다는 조직을 우선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조직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갑질’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명백한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중립적인 사태해결은 무의식의 은밀한 공모와는 질적으로 다른 노골적인 공모인 것이다.

우리대학의 모교수의 ‘갑질’이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대학당국은 문제의 해결보다는 무마에 더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문제가 커지는 것이 우리대학의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는 사태를 더 크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오히려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고질병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근본적인 치유책을 제시하는 것이 제주대학교의 명예를 높이는 것이다. 학교의 위신을 걱정하다 망신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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