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심사평

현택훈 시인

시 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이 대체로 참신한 요소들이 많았다. 심사를 진행하는 동안 앞으로 제주 문학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어서 설레었다.

「프라하의 겨울」 외 4편을 응모한 박선미(철학과)는 주로 이국을 장소로 한 이미지가 낯설어서 신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문장이 안정적인 점은 장점이지만 앞으로 시를 계속 쓴다면 깊이가 있는 함축이 필요해 보인다.

「도시」 외 5편을 응모한 윤서영(윤리교육과)은 입상권에 들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시적 정서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시적 자아를 계속 시의 자장 안에 둔다면 시가 더욱 견고해져 이번 백록문학상이 전화위복이 되리라 믿는다.

시 부문 가작으로 양인철(국어국문학과)의 시 「비」를 선정했다. 「기도」 외 4편을 응모한 양인철의 시들은 여느 대학생의 시와 다르게 대상에 대한 관조가 눈에 띄었다. 시 「야경」에서 “나는 이 빛 아래 꿈을 꾸듯이/ 춤을 출거야 전깃줄 위로 올라가”라는 표현은 야경 속에서 사는 목격자의 역할을 묘한 긴장으로 전해준다. 특히 시 「비」는 “고여있던 기억들은 이제 추억처럼 날아가서/ 구름이 되어 비가 내릴 텐데”라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자칫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제재를 상쇄한다. 이미지가 홍수를 이루는 이 시대에 절제의 자세를 지니고 있는 점이 놀랍다.

아쉬운 점은 응모한 대부분의 시들이 형식이나 아우라가 비슷한 분위기로 흐른다는 점이다. 좀 더 다양한 시의 울림을 통해 시의 공감대를 확대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 부문 당선작을 선정하는 건 큰 고민이 되지 않았다. 작년 제37회 백록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이 준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하는 터라 이번 백록문학상도 내심 기대했다. 다행이 「무제」 외 4편을 응모한 홍수빈(국어교육과)의 작품들이 그 몫을 차지해 주었다.

홍수빈은 요즘의 시를 많이 읽어본 것 같다. 시도 유행가처럼 그 시대의 시 모습을 지니기 마련이다. 홍수빈의 시들은 지금 바로 문예지에 발표되어도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의미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시 「무제」는 봄날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인데 “봄을 닮은 네가 아른거린다. 네 소매가 바람에 너울거린다”라는 능청이 좋다. 응모작 대부분이 좋아서 당선작을 무엇으로 고를지가 고민이었다. 「선의 연쇄」나 「맺음말」도 좋았지만 당선작으로 하기에는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보여 「무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문장이 자연스럽고 흥미있는 표현들이 여럿 있다. 역대 백록문학상 수상자 중에서 제주문학계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작품활동을 보인 작가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홍수빈 역시 “문장을 예쁘게 엮고 목걸이 마냥 네 목에 걸어주고파”(「작문시간」)라는 다짐처럼 앞으로 훌륭한 시인으로 탄생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아쉽게 탈락한 응모자 중에서는 개성 있는 시의 마음을 지닌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그 마음을 유지하면서 많은 시를 접하다보면 시를 더욱 깊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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