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평

조중연 소설가

백록문학상을 심사하는 동안 토끼와 거북이의 트라우마를 떠올렸다. 이는 예술계에서 오래된 화두다. 신이 내려주신 막강한 달란트를 가진 토끼의 날렵함과 참신함. 반면 반짝반짝 빛나진 않지만 한 땀 한 땀 근성으로 찍어낸 거북이의 가독성…. 결승점을 누가 먼저 통과하느냐는 실제 경기와 달리 글 경주는 좀체 승부를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몇 년 간 심사를 하면서 정통 문학을 전공하는 응모자의 작품 중 눈길을 잡아끌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당선작 없는 가작이 뻘쭘(?)하지 않도록 빙 둘러 세우는 병풍 자리에 종종 이름을 올리곤 했다. 한마디로 기능적으로는 뛰어나나 ‘차별화된 이야기’에 실패한 작품들이다. 이번에는「당신이 보고 싶은 밤」과 「마이크 바톤」이 그랬다.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문장을 차용하여 조언하면, “바보야, 문제는 ‘기능’이 아니라 ‘뭘 쳐다보느냐’야.” 쯤 될 것이다.

마지막까지 고민한 작품은 「목소리」와 「변신에 관한 고찰」이었다. 두 작품 모두 당선작의 범주에 들진 않지만, 가작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목소리」는 무당이라는 범상치 않은 소재, 치밀한 복선과 전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까지 아우르는 이야기의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여기에 ‘화해와 치유,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라는 특제 무기까지 장착하여 이야기 전선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소설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아직 자기만의 글 속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이 정도로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가’가 핵심 워딩이 될 것이다. 응모자에게 한 땀 한 땀 자신의 문장을 성찰하는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과제로 남긴다.

「변신에 관한 고찰」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소재를 나름의 치밀한 전략으로 기술했다는 점에서 빛났다. 거기다가 심리 묘사도 탁월하다. 안정적인 지반 위에 세워진 이야기 집처럼 높은 가독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결말 부분에서 결함이 발견된다. 마치 장편소설의 한 챕터를 황급히 마무리 지은 듯한 느낌이다. 낭떠러지식의 ‘서든데스’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에둘렀으면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었다.

예술가는 보통 토끼로 시작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북이로 변해간다. 자기 관리와 별도로, 달란트의 빛은 청춘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화자가 K를 떠나는 선택은 옳았다. 그렇지 않으면 화자는 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는 K처럼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화자는 두 번 다시 ‘초록고래’와 맞닥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것은 ‘초록고래’가 삶의 터닝 포인트마다 어김없이 나타나 준다는 조건 하에서 성립하는 문장이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삶이 뜻대로 되지 풀리지 않는 경우가 왕왕 생길 것이다. 행여 육지에 나갔다가 실패했다 해서 좌절하지 말자. 고향… 그래,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다. 실패했다고 나무라지 않는 제주도의 어머니가 계시다. 그 어머니가 눈도 못 마주치고 눈동자가 자꾸만 흔들리는 자식에게 내어주는 조악한 밥 한 상? 그것이 남에게 떳떳이 내놓지 못할 형편없는 것일지라도, 몇 숟갈 퍼 먹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어떤 위로보다도 용기를 북돋아주는 거늑한 밥상이 있음을 기억하자. 문청에게 문학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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