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0.11 목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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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4ㆍ3문화, 그 역사의 현장에 직접 가보다동아시아 3개국 학생들 모여 제주의 아픔 느껴
외국인 학생들 “제주의 역사적 비극 알게 된 값진 시간”
참가 학생들이 조별로 모여 하루동안 가장 인상깊었던 활동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고 있다.

입학 전 제주도로 학교를 오게 됐으니 주말마다 제주도 이곳저곳을 많이 둘러볼 기대에 부풀었다. 입학 한 달 만에 꿈같던 계획은 사라졌다. 수업이 없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면 과제를 하거나 기숙사에서 뒹굴기 일쑤였다. 그러다 교양동 게시판에 포스터 한 장을 보게 됐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4ㆍ3문화 이해과정’, 1박 2일 동안 4ㆍ3사건과 관련된 장소와 유네스코 문화유산과 관련된 장소를 탐방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도통 학교 밖을 나가지 않던 주말에 학교 밖으로 나가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지원서를 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4ㆍ3문화 이해과정’은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이 주최하고 한국대학스포츠협회 부설 문화체육아카데미가 후원한 교육프로그램이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은 현재 제주에 삶의 기반을 두고 있는 대학생 및 유학생들이 제주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고 제주자원의 가치와 활용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마침내 교육 당일인 9월 7일, 집결 장소인 경제통상진흥원으로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한 남성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떻게 지원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물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한 박세철씨는 여름 동안 제주도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제주도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단 생각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엔 서울, 충남 등 타지에서 유학 온 대학생, 제주도 토박이 대학생, 중국과 일본에서 온 유학생들 등 60여 명이 참여했다.

정확하고 전문적인 설명을 위해 통역사도 자리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학생들과 프로그램 운영진 모두 버스를 타고 4ㆍ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조별로 평화공원 앞에 모인 학생들은 1~3조와 4~6조로 나뉘어 관람을 시작했다. 관람은 공원 내 해설사와 통역사가 번갈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지난봄에 ‘4ㆍ3사건과 관련된 장소에 가봐야지’라고 마음먹었는데도 좀처럼 가보질 못했다. 이번 기회에 전문가의 안내로 방문하게 돼 다행이었다. 4ㆍ3평화공원은 제1관부터 아주 인상 깊었다. 실제처럼 정교히 만든 긴 동굴을 지나니 거대한 백비가 눕혀져 있고 천장은 아주 높아 마치 깊은 우물 안에 갇힌 것처럼 느껴졌다. 해설사는 비석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고 눕혀져 있는 이유가 4ㆍ3이 아직 공식적인 이름도 없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도 되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학기 4ㆍ3사건을 주제로 한 글쓰기 강의 때 들은 내용이었지만 백비를 직접 보며 같은 말을 들으니 더욱 울림이 컸다. 제2관에서 제5관까지는 4ㆍ3사건이 일어난 배경부터 4ㆍ3사건의 진행과정, 4ㆍ3사건 피해상황, 4ㆍ3사건 진상규명운동이 다뤄져 있었다. 지난 학기에 수업을 들으면서도 4ㆍ3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했는데, 두 시간에 걸친 해설을 들으니 내 지식의 깊이가 얼마나 얕았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의 역사적 비극에 대해 배울 때와 같이 ‘이러한 역사적 비극이 다신 일어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는 시간이 됐다.

가장 놀랐던 점은 4ㆍ3평화공원의 전시 수준이었다. 4ㆍ3사건에 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어 4ㆍ3평화공원만 돌아도 4ㆍ3사건에 대한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같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던 학생들 중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는 점이었다. 전시의 내용이 방대하고 몇몇 부분은 한국 학생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해설이 진행될수록 지쳐 나가떨어지는 중국 학생들의 수가 크게 늘었다. 물론 몇몇 중국학생들은 끝까지 해설을 들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해설을 지루해하는 학생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4ㆍ3 70주년으로 세계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시점에 이런 점은 눈 여겨봐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4ㆍ3이 어떤 사건인지 알고 싶게 하려면 처음부터 방대하고 어려운 정보를 전달하기 보단 간단하게 키워드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 같단 생각에 과정 마지막 날 설문조사에 내 생각을 적기도 했다.

다음 장소는 북촌 너븐숭이 4ㆍ3기념관이었다. 4ㆍ3기념관은 4ㆍ3평화공원에 비해 작은 규모였지만 알찬 내용이 전시된 곳이었다. 특히 4ㆍ3사건 이후 4ㆍ3사건에 대한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게 된 계기인 ‘아이고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땐 당시 경찰의 적반하장 태도에 분노했다. 짧은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북촌마을 4ㆍ3길 탐방을 시작했다. 4ㆍ3기념관에서는 북촌리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이창협 해설사께서 설명해줬다. 북촌마을 곳곳을 다니며 본인의 가족들이나 이웃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줘서 이해가 더욱 쉬웠다. 4ㆍ3당시 총 자국이 선명한 등대 비석과 4ㆍ3사건을 다룬 소설인 『순이삼촌』의 한 장면의 배경이 된 장소까지 마을 곳곳에 그 비극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가장 놀라운 곳은 북촌초등학교였다. 가장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던 장소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과 아직도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점 때문이었다. 몇몇 마을 주민들은 아직도 북촌초등학교에 오는 것을 꺼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학생들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함과 동시에 역사적인 장소에서 학창생활을 보내는 만큼 높은 역사적 의식을 갖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1일차의 주요 일정이 모두 끝난 후 다 같이 숙소로 이동했다. 7시부턴 리조트 강당에서 조별활동이 있었다. 하루 동안 본 것 중 인상 깊은 점을 큰 도화지에 그림, 글 등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우리 조는 상의 끝에 도화지를 반으로 나누어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 4ㆍ3사건과 중국인의 관점에서 본 4ㆍ3사건으로 표현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루 동안의 일정을 쭉 돌이켜보니 북촌초등학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1947년 당시의 북촌초등학교 사진을 찾아 그렸고, 학교 앞엔 4ㆍ3사건으로 인해 희생당한 소녀와 소녀의 어머니를 그렸다. 맞은편에는 현재 북촌초등학교의 모습과 밝게 웃고 있는 학생들을 그렸다. 두 학교 사이의 여백엔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고 살아감과 동시에 지금의 아이들은 과거와 같은 끔찍한 일을 절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렸다’는 글귀를 썼다.

발표순서가 돼 조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그림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그림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하루 동안 보면서 느꼈던 점을 덧붙였다. 4ㆍ3에 대한 공식 명칭 명명, 4ㆍ3에 대한 완전한 진상규명, 4ㆍ3의 교과서 수록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우리 조가 발표할 땐 한 명도 빠짐없이 경청해줘서 선물도 받게 됐다. 나머지 조에서 발표를 할 때 외국인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얘기가 있다. 제주도를 그저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으로만 생각했는데, 하루 동안 4ㆍ3에 대해 배운 후 현재의 평화가 있기 전 과거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배우고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루 동안 복잡한 배경의 슬픈 역사를 마주하면서 끔찍하다고 생각했는데, 4ㆍ3이란 단어 자체도 몰랐던 외국인 학생들의 입장에선 끔찍함에 앞서 예상치 못한 제주역사에 놀라움과 충격이 더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룸메이트인 제주대 사학과와 정치외교학과에 교환학생으로 재학 중인 다카노와 카나에게 하루 동안의 소감을 물어보았다. 다카노와 카나는 “평소 학교를 다니면서 4ㆍ3이란 단어는 많이 들어봤지만 어떤 사건인지 몰라 답답했는데 항상 궁금했던 4ㆍ3사건을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어 좋았고, 앞으로 또다른 제주 문화나 역사를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엄수지 수습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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