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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사회 환원’, 대학은 ‘인재 양성’… 각자 책임 다해야 지역발전”발전기금 유공인사 인터뷰(1) - 오헌봉 유성건설 회장
오헌봉 회장과 인터뷰를 나눴다.

“사업이 잘 되는 건 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사회 제도권 안에서 각 주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을 다시 환원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1998년부터 제주대학교에 발전기금을 내놓으면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연을 이어왔다. 누적 금액이 무려 21억9850만원.

기업은 ‘사회 환원’, 대학은 ‘인재 양성’이라는 책임을 강조했던 유성건설 대표이사 오헌봉(74) 회장의 굳센 믿음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1989년 설립한 유성건설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향토기업을 이끄는 기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 이윤의 지역사회 환원을 위해 발전기금을 쾌척하기 시작했다. BK21ㆍ누리사업 대응자금ㆍ골프연습장 시설후원금ㆍ해양특성화기금 쾌척뿐만 아니라 유성장학기금 조성, 교육성장네트워크 꿈들교육센터 건립 등 물심양면 제주대학교의 발전을 도왔다.

그는 맨손으로 지역사회에서 손에 꼽는 건설업체를 일구기까지 순탄치 않은 청년기를 보냈다. 1944년 제주시 이도동에서 태어난 그는 제주상고(현 제주중앙고)에 근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가난했던 집안 살림에 학비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다. 제주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내 꿈을 접었다. 어수선한 시대 상황에 가운이 기울어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2남 5녀 가운데 장남이라 책임감이 남달랐다. 힘에 부칠 때마다 ‘젊을 적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을 되새겼다.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트이리라 믿었다. 근면성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다.

덤프트럭으로 물건 운반하는 일부터 시작해 중장비로 분야를 넓혔다. 현장 일을 하면서 눈이 뜨였다. 영세한 규모이다 보니 전문적인 공사를 맡아서 해보고 싶어졌다. 1980년도에 전문건설 면허를 받았다. 하도급으로 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자 1989년도에 유성종합건설을 설립했다. 향토기업으로 출발해 30년 동안 제주지역 굴지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유가 생기자 이웃을 돕는 일부터 관심을 가졌다. 1996년부터 양로원과 보육원, 장애인시설 등에 후원금을 내기 시작하여 20여년동안 지속하여 현재까지도 실행하고 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힘이 되는 게 인간의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부에는 원칙이 없다. 형편 닿는 대로 할 뿐이다. 꾸준히 하다 보니 주변에서 기부처 권유를 많이 받는다.

오 회장은 “다 도와주면 좋으련만 없어서 못 도와주는 것이 마음 아플 때가 있다.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1998년엔 발전기금으로 1000만원을 내놓으며 제주대학교와 다시 인연을 맺었다. 언젠간 해야 할 일이라고 마음에 담아뒀다가 지인의 권유로 실천에 옮겼다. 비록 학사모는 쓰지 못했지만 모교인 제주대학교에서 좋은 인재를 배출해야만 지역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2006년엔 체계적으로 학생들을 돕고자 ‘유성 오헌봉 장학기금’을 설립했다. 현재 기금 규모는 8억 원 가량에 이르지만 오 회장은 아직도 모자라다고 고개를 젓는다. 그는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지역사회에 나와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나갈 인재가 되었으면 한다.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규모를 더 키울 계획이다. 그러려면 우리 유성건설이 잘 되어야하니 기업 운영에 대한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금을 내놓을 때마다 느끼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난 2013년 제주대학교 교내에 흉상을 건립할 때는 잊지 못 할 순간으로 꼽는다. 오 회장은 “흉상은 영원히 남는 것이니까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학생들에게도 공부하기 좋은 여건이 필요하겠지만 교수에게도 훌륭한 연구 조건이 필요하다. 추후에는 이런 부분을 확장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강조했던 이념이 주변에 퍼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더없는 보람이다. 유성건설에 오래 몸담으며 함께 일했던 김남식 청봉환경 대표도 제주대학교 발전기금으로 많은 금액을 내놓고 있다.

남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인 그는 외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일에는 누가 등 떠밀지 않아도 앞장섰다. 2002년 JIBS제주방송 설립은 가장 보람된 일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지역의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데 헌신하기 위해 벌인 일이다. 이 역시 사회 환원의 일부로 여기며 JIBS제주방송 부회장을 맡고 있다.

때는 놓쳤지만 공부엔 늘 뜻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못 배운다. 배우면 배운 만큼 써먹어야한다는 생각”이라며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공부에 매진했다. △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 수료 △ 제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자과정 수료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환경고위정책과정 수료 △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최고위과정 수료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과정이라면 먼 길도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지난 2002년엔 제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40여 년 만에 쓴 학사모이다. 2006년엔 제주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70세를 넘긴 나이에도 오 회장은 하고 싶은 일이 여전히 많다. 10여 년 전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다가 가까스로 회복했다. 완치가 어려운 병으로 1000명 중 한 사람 있을까 말까한 확률이었다. 오 회장은 “운이 좋았다. 후유증이 거의 티가 나지 않고 완치에 가깝게 회복했다. 몸이 나아진 것도 더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더 많이 내놓으라는 뜻이 아닐까 곱씹어본다.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건강이 허락했다면 제주도 관광분야에 활성화하는데 일조하고 싶었다. 천혜의 자연을 지닌 제주도는 관광지로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건설업을 하면서 개발과 보존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다. 서로 상반된 개념이지만 공존할 길을 찾는 관광업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몸이 허락하지 않아서 시도하지는 못했으나 그 아쉬움을 후학 양성으로 달래려고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학생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역대학이라고 의기소침하지 말고 당당하길 바란다. 그래야 다른 대학과 나란히 어깨를 하는 일류대학으로 갈 수 있다. 훌륭한 학생, 훌륭한 교수가 훌륭한 대학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오헌봉 회장 약력
제주시 이도동 출신, 1944년
1989년 유성건설 설립
2001년 (주)제주방송 사장
2001년 대한경영학회 기업가상
2002년 대한민국 산업포장
2003년 사회복지 자원봉사유공 표창장 수여
2006년 제주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수여

오헌봉 회장 발전기금 출연내역
1998년 1천만원(경영학과, 관광과경영경제연구소)
2003년 1억원(골프장 시설비)
2004년 8천만원(골프장 시설비)
2006년 3억원(유성장학기금)
2007년 2천만원(골프장 교육시설, 물품)
2008년 1억원(제주대학교병원)
2011년 3억5천만원
(유성장학기금 3억원, 인재양성관건립기금 5천만원)
2013년 2억원(유성장학기금)
2016년 7억원(유성장학기금)
BK21대응자금 6천 2백 5십만원
누리사업대응자금 6천만원
교육성장네트워크꿈들교육센터건립 2억1천만원

김태연 특별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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