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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각자의 그곳은 어디입니까익숙함에 알지 못했던 제주대의 아름다움
나만의 장소를 찾자
  • 사회교육과 이소영 교수
  • 승인 2018.11.0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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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 영사회교육과 교수

이곳에 부임한 지 이제 삼년 되었지만, 제주에서 어디가 제일 좋은가 질문을 받으면 여전히 답하기 쉽지 않다. 운전을 못하는지라 바닷가에 스무 번도 채 안 가보았고, 맑은 날 학교도서관 올라가는 층계에서나 ‘저 봉우리가 한라산인가 보군’ 구경하니 말이다. 재래시장을 둘러보거나 맛좋은 빵가게를 찾아가거나 떡볶이 사먹는 것 등은 혼자서 곧잘 해도 누군가 먼저 제안하기 전에 야외나들이를 계획할 부지런함은 갖지 못해 그렇다. 가령 토요일 아침 눈을 뜨니 날이 화창하다 하여 ‘시외버스 타고 목장 다녀올까’ 혹은 ‘김밥 싸서 혼자 소풍갈까’ 식의 설렘이 솟아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다시 드러누워 쿨쿨 잘 따름이다.

그래도 산중턱에 위치한 우리 학교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 것 같다. 이에 관해 제법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데, 일과 가운데 대부분을 교정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만 이런 것이 아니라 지방에 소재한 일정 규모 이상의 대학들은 대체로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설령 너른 대지에 나무들이 아주 많고 교내 숲에서 노루가 나타나는 대학이 전국에 십 수 개나 된다 할지라도, 그 학교들에 아직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제주대학교 교정이 이 나라에서 최고로 아름답다.

교내의 각별한 장소들 가운데 하나가 노천극장 앞 잔디밭이다. 사범대 계단을 내려가 정문 방향으로 걷다 보면 왼편으로 낡은 야외무대가 보인다. 그 앞에 펼쳐진 너른 잔디밭 양편으로 오래된 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학생들이 풀밭 여기저기 둘러앉아 재잘거리는 한낮에는 활기차서, 나무 아래 벤치에 걸터앉은 젊은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이는 한밤에는 달콤해서, 해가 쨍하면 볕이 반짝거려서, 비가 오면 싱그러워서, 안개가 내려앉으면 경이로워서, 그래서 좋았다.

교내 나무들을 관찰하는 취미도 생겼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차이 정도밖에 모를 만큼 나무 종류에 무지함에도 참으로 다양한 식물들이 교정에 서식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중 본관 뒤편의 큰 나무들이 특히 마음에 든다. 식물학적으로는 활엽수라는 점 외에 아는 바 없으나 문학적으로 말하라면 ‘떡갈나무나 느티나무라는 이름이 어울릴법한 나무’다.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는 봄에는 청신하고, 이파리가 성성해지는 여름에는 싱그러우며, 색색들이 물들어가는 가을에는 넉넉하고, 겨울이 되어 앙상해지면 또 나름의 고아한 멋이 있다. 나란나란 서 있는 그들 가운데 두 번째 가로등 앞의 것을 ‘내 나무’하기로 했다. 물론 학교 당국의 허가를 받은 것은 아니고 내 마음 속으로만 그렇다는 거다.

또 다른 각별한 장소는 교내 원형운동장이다. 밤이 되면 고요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쳐보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다. 임금님 귀에 관한 기밀을 품고 있진 않으나 늦은 밤 종종 운동장을 걷곤 한다. 시야를 가릴 높은 건물이 주위에 없어 들어서자마자 먹색 하늘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둘레를 곧고 높은 나무들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축제기간이 아닐 때는 보통 조명등을 켜질 않아 대단히 캄캄하지만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다. 학생회관 쪽에 야간농구 하는 학생들이 항상 몇몇 있어, 괴한이 나타나도 소리치면 누군가 달려오겠지 싶어서 말이다. 어두우니 별들이 한층 또렷하게 보이는데, 맑게 갠 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 같다. 고개를 재끼면 머리 위에서 째그랑, 소리가 날 듯 반짝인다. 그렇게 나무들에 에워싸인 채 별들을 올려보고 있자면 ‘내가 다른 누가 아닌 나여서 행복하다’는 감상마저 일곤 한다. 형님인 별들과 누님인 달, 어머니인 대지와 그 품에 안긴 우리들.

피오르드 해안도 피레네 산맥도 아닌 학교운동장을 두고 무슨 어머니 대지 운운하냐 하실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피오르드와 피레네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원할 때 언제든 향유하기는 어려운 아름다움이니까. 날마다 발길 닿는 사범대 계단 아랫길과 잔디밭, 본관 뒤편, 그리고 밤 운동장이 지금 나의 일용할 대자연이다. 이 글을 읽을 우리 학교 학생들 역시 교정 어딘가에 ‘내 나무’ 혹은 자신만의 각별한 장소를 만들어갖고 있을 듯싶다. 여러분 각자의 그곳은 어디일지 궁금하다.

사회교육과 이소영 교수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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