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 2001)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 성지여행을 다녀왔다. 그 시기는 위 소설이 발표된 이후 약 10여년이 흐른 199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성지여행이라지만, 종교적 성지(聖地)라기 보다는 위스키로 대표성 있는 위스키 산지에 대한 탐방(探訪)이라 함이 옳다. 개인적으로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もし僕らのことばがウィスキ-であったなら)>이라는 일본판 원제를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둘 이상의 사람들이 언어를 뒤로 하고 위스키를 내밀면 상대는 그 술잔을 조용히 받아 목 넘김 하면 그만이다. 인간의 언어는 그 뒷전에 놓인다. 위스키를 철저하게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위치한 아일레이(Islay) 섬에서의 위스키 여정을 그리고 있다. 아일레이 위스키의 경우 전 세계 제조되는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ey)의 95% 이상에 혼합되고 있는 양질의 위스키이다. 그만큼 깊이 있는 풍미와 맛의 밸런스(balance) 그리고 묵직한 바디감(body)이 상당하다. 단, 단점이 있다면, 이 지역 싱글몰트 위스키 고유의 흙 내음이 강한데, 이는 아일레이 지역 석탄의 일종인 이탄(peat)향이 맥아(malt) 건조 과정에 쓰이면서 자연스레 입혀진 부분이다. 처음 접하는 초보자를 당황케 하는 맛이기도 하다. 하지만 추천컨대 일반 곡물(grain) 보다는 보리의 맥아로 제조된 위스키, 여러 증류소에서 제조된 블렌디드 위스키 보다는 하나의 증류소에서 제조된 싱글몰트 위스키를 권한다. 여기에 덧붙여 하나의 오크통에서만 추출된 위스키(single cask/barrel)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아일레이 섬에는 총 7군데의 위스키 증류소가 있다. 저자는 이곳들을 탐방하며 때로는 근처 펍(pub)에서 이들 위스키들을 즐긴다. 그러면서 그 맛의 정도가 모두 다르지만 이 지역 고유의 공통적 특성으로 인한 맛의 합치점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섬지역의 해풍(海風)과 갯바람은 이 지역 나무와 풀에 묻어나고, 그 나무를 태워 건조된 맥아는 이 지역 소나무, 삼나무로 제작된 오크통 안에서 숙성된다. 숙성되는 과정에서 오크통은 바다 내음을 머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크통 안의 위스키는 이를 양분 삼아 향미를 더한다. 또한 조용한 섬마을의 분위기만큼 이들 섬사람들의 여유 있는 삶은 위스키에 대한 자부심에 더하여 아일레이 지역만의 독특한 위스키 양식을 형성하고도 있다.

위스키, 다 좋다. 그런데 웬 뜬금없는 술 얘기인가? 한국에는 소주가 있지 않는가? 제주 지역 소주에 요즘은 제주 맥주 전문점도 호황에 있다. 결론부터 적자면, 우리 모두 좋은 술로 취했으면 한다. 여러 병의 소주에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안주 보다 저렴한 위스키를 즐겼으면 하는 새로운 술 문화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그 근거를 몇 개 적자면, 첫째 고구마, 옥수수, 사탕수수 심지어 쌀 등의 곡물로 만들어진 술 대부분은 뒷끝이 안 좋아 전 날 마신 술자리를 후회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그 것이 소주와 같이 기성품의 희석주일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둘째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위스키들의 단가는 그리 높지 않다. 2-3만원대, 조금 더해 4만원대 블렌디드 위스키만으로도 3-4명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안주는 치즈스틱에 감자과자 하나면 충분하다.

셋째 위스키는 원액 그대로 마시는 스트레이트(straight)도 있지만 얼음에 희석해 마실 수 있는 온더락(on the rocks), 물에 섞어 마시는 방법이 존재한다. 굳이 따지자면, 미국에서 개발된 얼음 활용법 보다는 위스키 온도와 가장 유사한 온도의 물과 희석해서 마시는 방법이 정석이다. 실제 위스키에서 스트레이트는 첫잔을 마실 때, 반모금 정도로 향과 풍미를 음미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 다음 부터는 그 지역의 물과 희석해서 마시곤 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익숙지 않지만, 위스키 옆에 생소한 주전자가 놓여 있곤 하는 것이다. 넷째 위스키에도 권장량이 존재한다. 위스키를 소주처럼 마시면 죽는다. 남성의 경우 25㎖ 잔으로 3-4잔, 여성의 경우는 2-3잔이다. 소주잔이 50㎖이므로 이를 계산하면 소주 2잔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위스키와 더불어 온더락과 물을 권하는 바이다. 상술하였듯이 위스키 또한 언어가 될 수 있음은 그 자체가 언어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음과 더불어 이를 사이에 두고 오고 갈 수 있는 대화가 풍부해짐을 의미한다. 아주 쉽게 비유하자면,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몇 시간 이어질 수 있는 대화를 상상해 보자. 위스키는 대화가 깊어질수록 연해진다. 연해지는 알코올만큼 상대와의 긴장관계는 완화될 것이다.

끝으로 제목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 형태적으로는 위스키 생산지의 풍경, 삶의 내음, 물의 맛과의 조화를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이 보다는 감성적으로 ‘니가 안와? 그럼 내가 가마!’라는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레임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 젊은 청춘들이 힘들고, 기쁠 때 모두 좋은 술에 기대었으면 좋겠고, 술 보다는 사람에 의지하였으면 한다. 덧붙여 다음 날 일어나 전날의 만남에 씨~익 웃으며 하루를 맞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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