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양 범 지리교육전공 4

대학의 도서관, 도시의 시장은 닮았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학 내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에 도서관이 있고, 도시 내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에 시장이 있다. 또한 공간 안에서 맡는 기능도 닮았다. 도서관은 대학이 창조한, 창조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시장도 도시의 잉여생산물을 분배하거나 상품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한다. 정리하자면, 도서관과 시장은 상반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꽤 닮아 있다.

얼마 전 캠퍼스에 건물이 하나 ‘더’ 들어섰다. 그 이름은 디지털 도서관. 도시에 시장이 생기듯, 학교에 도서관이 하나 더 생기는 일은 어쨌든 좋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필자는 소식을 접하고는 온갖 상상을 한다. 아날로그의 상징인 활자가 드디어 디지털이라는 화려한 옷을 입은 것인가! 이게 바로 4차 산업혁명이 사랑하는 창의ㆍ융합의 표본인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상상은 상상이다. 디지털-아날로그의 낯선 조합은 생각보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쉽게 말해, 디지털 도서관은 디지털화 된 도서 관리의 형식이 책이라는 아날로그를 품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도서관은 현실적으로 어떤 이점을 줄 수 있을까? 냉정히 말하자면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은 ‘0 또는 1’을 원해서 온 사람들이 아니다. ‘인간 역사의 주름’을 알고 싶어서 왔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도서관 이용자들은 아마 도서관의 형식이 디지털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찾고 있는 책이 ‘십진분류표’대로 꽂혀 있지 않을지라도, 결국 그것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이를 문제 삼지 않는 마음 넓은 사람들이다. 요컨대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단순히 상품을 올려놓기만 하는 가판대의 질을 고려하지 않듯,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형식이 기존의 이용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디지털도서관이 생긴 이후로 우리 모두는 책을 보거나 빌리려면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건물 사방에 설치된 출입문은 코드화 된 도서관 이용증 없이 출입할 수 없다. 재학생의 경우엔 앱을 이용해 문을 통과하는 거사(?)를 치른다. 그러나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은 휴학생이나 처음 방문한 일반인은 그 관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가끔 목격된다. 필자는 도서관이 이처럼 ‘배타적 공간화’ 되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시장이 손님을 가려서 받으면 장사가 안 되듯, 도서관이라고 뭐 다를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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