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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 구술로 보는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문화유산 평가에 따른 해녀 문화의 특징을 중심으로 -
  • 류인선, 김성준 (사회교육과 일반사회교육 전공3)
  • 승인 2018.12.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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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시작하며

제주도의 시간은 제주해녀들이 뿜어낸 수백만 숨비소리1)의 파도를 맞으며 흘러왔다. 그만큼 제주해녀는 제주도의 많은 시간의 흐름을 몸소 느낀 작은 제주도라 할 수 있다. 제주도민들에게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보고 자란 삶의 모습이다. 여느 여인들처럼 농사를 짓는 가운데 깊숙한 바다 속에 뛰어들어 해산물을 캐고 살림에 이바지하는 여인들은 제주도의 흔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제주해녀는 오랜 시간 제주의 아이들을 키워온 버팀목이며 가장이다. 해녀들의 이러한 발자취는 제주해녀가 제주도를 먹여 살려온 살림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제주해녀의 인구는 1970년대 이후, 감귤 산업과 같은 영농 산업의 급증에 의해 급감하였고 신규해녀가 충원되지 않아 그 문화는 점점 소실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해녀가 가진 가치와 문화적 계승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던 가운데 2006년 잠녀기획 세미나2)에서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와 해녀가치의 보존과 전승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10년간의 등재 논의 및 실제 과정을 통해 2016년 11월 30일, ‘제주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제주해녀문화가 지닌 문화적 가치가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고은솔, 2018). 특히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이하 무형유산위원회)에서는 제주해녀문화의 다음과 같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첫째,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 둘째, 자연친화적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점, 셋째,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제주해녀문화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평가들의 참모습을 제주해녀의 삶에서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해녀들의 삶에 대해 직접 관찰하고 경청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제주해녀의 삶을 직접 관찰하여 제주해녀문화가 정말로 그러한 가치를 지녔는지를 드러내는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제주해녀의 고령화와 그로 인한 문화 단절 가능성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대상의 삶을 실제로 듣고 바라볼 수 있는 연구방법인 ‘구술사’는 본 연구가 추구하는 바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본 연구는 구술사를 통해 제주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재로 이끈 평가와 제주해녀의 실제적 삶이 일치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주해녀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고, 해녀 공동체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있는 ‘구좌읍 김녕리’에서 생활하는 ‘해녀’들을 대상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Ⅱ. 이론적 고찰

 1. 이론적 배경

  1) 제주해녀문화

제주해녀문화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존재인 제주도의 해녀들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독자적으로 전승되어 온 기술 및 문화를 가리킨다. 2009년에 제정된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 보존 및 전승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해녀(海女)란 ‘수산업협동조합의 가입자로서 제주특별자치도 안의 마을 어장에서 잠수하여 수산물을 포획·채취하고 있거나 과거에 이와 같은 일에 종사하였던 여성’을 말한다. 또한 해녀문화란 ‘제주해녀들이 물질과 함께 생활에서 생겨난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말하며, 여기에는 물속에 들어가는 나잠 기술과 어로3)에 관한 민속지식, 신앙, 노래, 작업 도구와 옷, 공동체의 습속 등이 포함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제주해녀는 생계를 위해 산소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수심 10m까지 잠수하여 전복이나 성게 등 조개류를 채취한다. 바다와 해산물에 대해서 잘 아는 제주해녀들은 한번 잠수할 때마다 1분간 숨을 참으며 하루에 최대 7시간까지, 연간 90일 정도 물질을 한다. 해녀들은 물질 능력에 따라 하군, 중군, 상군의 세 집단으로 분류되며, 상군 해녀들이 나머지 해녀들을 지도한다.

제주해녀들은 잠수를 앞두고 무당을 불러 바다의 여신인 용왕할머니에게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며 잠수굿을 지낸다. 잠수굿은 영등굿4)의 일종으로 물질이 극성스러운 해안마을에서 따로이 치르는 굿이다. 물질을 극성스럽게 치르는 대표적인 마을이 김녕리이다. 다른 마을에서의 잠수굿은 음력 2월 영등굿과 함께 하거나 해녀들끼리만 조촐하게 치른다. 하지만 김녕리의 잠수굿은 예로부터 마을의 전통 굿으로써, 용왕문이 열리는 음력 3월 8일 해녀탈의장 근처 '사계알(굿터 이름)'이라는 곳에서 치러진다. 김녕리 잠수굿은 문순실 심방 주관으로 아침 9시경부터 저녁 5시에 이르기까지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종일 굿판을 벌인다. 잠수굿은 촌락공동제면서 마을의 축제적 성격도 띠고 있다.

제주해녀는 다른 지역의 해녀와 달리 마을 어촌계가 마을 주변 어장에 대한 입어권5)을 가지고 있어 어촌계와 해녀회가 한 공동체를 구성해 문화를 전승해오고 있다. 이는 생태 친화적인 어로 활동과 공동체에 의한 어업 관리를 도와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높여주었다. 또한 부산, 울산과 같은 지역의 해녀는 개인의 직업인 반면에 제주해녀는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질 기술이나 해양 지식 등을 전수하며 오랜 세대를 걸쳐 이어오고 있다.6) 유교 문화가 깊게 뿌리박힌 한국에서 제주해녀는 드물게 주도적인 경제 주체로 활약한 여성이기도 하다. 제주해녀는 해녀 활동을 통해 지역경제를 이끌고 여성의 권리와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제주해녀문화는 인류문화로서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자 하는 움직임은 2001년부터 2004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과제로 제주해녀(잠녀)의 해양문명사적 가치와 <해녀학> 정립 가능성을 문화 비교론적 관점으로 모색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 제1회 세계잠녀학술회의에서 ‘해양문명사에서의 잠녀의 가치와 문화적 계승’에서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논의를 시작으로 2006년 잠녀기획 세미나에서 본격적으로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 등재와 해녀가치의 보존 전승’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후에 제주해녀박물관 개관 및 다양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통해 예비목록을 등재(2011년), 신청서 제출(2014년), 신청서 재제출(2015년)의 과정을 통해 2016년 11월 30일 등재되었다. 제주해녀문화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약 4,500명의 해녀와 100개 마을 어촌계와 해녀회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해녀문화 보전 및 전승위원회 등 관련 단체의 노력 속에서 이루어졌다.

앞서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제주해녀문화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 자연친화적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점,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음을 밝혔다. 이는 유네스코가 제시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기준7)에서 평가될 때,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써 결정적인 평가를 가져온 가치임을 알 수 있다.

  2) 구술사

구술사(oral history)는 구술에 기반한 역사서술뿐만 아니라, 구술의 방법에 의해 생산된 자료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구술사를 통해 구현되는 방법, 자료, 결과물은 구술 자료로 표현될 수 있다. 구술 자료는 말로 서술한 것으로, 구술자가 기억에 의존하여 과거를 현재로 불러온 것이다. 구술자의 주관적인 관점을 취하지만 동시에 구술자와 연구자가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유철인, 2010).

구술사는 문헌 자료가 많지 않은 계층이나 지역을 주목하게 되면 미처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이미 알려진 내용에 대한 다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윤택림, 2006). 이 장점으로 인해 구술사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보조적 자료로 활용되고, 더 나아가서 문헌 자료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사 쓰기로서 가치가 있다. 구술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인 구술 자료에는 특정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증언이 포함되어 있어서 하나의 사건을 재현하고 다양한 시각에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한정훈, 2012). 따라서 구술사 연구에서는 자기의 삶을 이야기한 사람이 얼마나 전형적이고 대표적인 사람인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특정 개인의 전기적 자료들이 가지는 주관성의 타당함을 강조하고, 주관적인 경험에 근거한 삶과 사회 및 역사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 도달할 것을 강조한다(윤형숙, 1994).

구술 자료의 수집은 기본적으로 심층면접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구술 자료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 나아가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의 구술사 연구문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정한 틀이 잡혀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구술 자료 수집 시 유의점이 존재한다. 구술자를 자료원으로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연구자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구술자의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 또한 개인의 구술사라고 하더라도 주변사람들로부터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어 구술자가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거나 부정확하게 제공한 정보를 검증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 더 나아가 구술자와 심층면접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에 대해 참여관찰을 하는 것은 구술자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구술자의 삶의 맥락을 찾는 데에 필요하다.

구술사의 해석은 구술자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연구자의 첫 질문부터 시작된다. 구술된 자료를 문자화된 텍스트로 만드는 것이 구술사에 대한 1차적인 해석이 되며, 구술사는 구술자의 경험의 맥락을 중심으로 해석(2차적인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구술기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구술사를 연구방법의 배경으로 둔 연구들이 많다. 특히나 구술사 연구방법은 반 구조화된 구술사 인터뷰를 사용하여 심층면접을 통해 구술 대상자의 경험을 내용 분석 자료로 삼는다. 그 외에 참여관찰과 문헌분석, 통계자료 분석 등의 다양한 연구방법을 결합하여 연구방법을 넓히기도 한다. 

 

 2. 연구대상 및 연구방법

  1) 연구대상

본 연구의 연구대상은 ‘구좌읍 김녕리 해녀’이다. 구술자가 거주하는 김녕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마을로, 제주공항에서 동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다. 주민 대다수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그림 1> 구좌읍 김녕리의 공간적 위치

김녕리는 다른 지역보다 해녀 공동체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9). 해녀의 수도 현직 87명, 전직 61명으로 많은 편10)이다. 김녕리 어촌계 해녀회는 다른 지역의 해녀회와 달리 동김녕, 서김녕으로 나뉘어 많은 수의 해녀가 각 바다 영역을 맡아 가꾸며 이어나가고 있다. 물질을 나갈 때도 각 바다 영역에서 40명 정도의 해녀가 함께 나갔다가 함께 돌아온다. 또한, 여전히 젊은 해녀와 고령 해녀들의 역할이 해상채취와 육상건조 활동으로 분담되고 얻어진 소득은 참여자 모두에게 공동으로 분배되고 있다. 매년 영등굿 외에 김녕리 해녀회 자체에서 잠수굿을 주최할 정도로 해녀회의 활동이 활발하다. 

그 중에도 해녀의 구술사를 집중하여 심층면접을 한 대상은 3명이다. 동김녕의 70대 현직해녀 안○○, 서김녕의 60대 현직해녀 고○○, 동김녕의 80대 전직해녀 김○○이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해녀의 삶과 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김녕리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하였다. 아래 표는 구술자들의 일반적 특성과 심층면접을 진행한 김녕리 마을 주민들을 나타내고 있다.

<표 1> 구술자들의 일반적 특성

2) 연구방법

본 연구는 2018년 2월부터 9월까지 진행되었으며, 제주해녀의 구술사를 문헌연구법, 심층면접법을 중점으로 연구했다. 

문헌연구법은 연구하고자 하는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 기존 연구의 결과물인 논문과 단행본 그리고 각종 보고서 및 간행물에 게재된 참고자료 등의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이다. 선행연구 자료를 얻기 쉽고 시간과 비용이 절약되며 정보 수집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헌연구법을 통해 해녀의 역사와 인식, 해녀에 대한 지원 정책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심층면접법은 연구자가 연구대상과 직접적인 접촉을 통하여 질문에 대한 연구대상이 생각하는 가치, 경험 등과 비언어적 표현까지도 파악하여 수집하는 방법을 말한다. 비교적 소수의 응답자로부터 심층적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을 때 활용된다. 심층면접법은 조사자가 응답자와 1대 1로 대면 접촉을 하며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응답자의 잠재된 동기·신념·태도 등을 발견하는 비표준화 면접 방식의 일종이다. 그러나 면접 결과의 가변성으로 인해 비교 가능성을 잃기 쉽고, 표준화 면접에 비해 신뢰도가 낮으며, 면접자에게 부여한 권한을 통제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심층면접의 단점일 수 있는 부분을 살려 구술자의 주관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심층면접의 질의응답으로 단순히 이루어지는 방법이 아닌, 라포 관계를 먼저 형성하여 구술자와의 친밀감으로 진솔한 구술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과정을 거쳐 삶의 내용을 듣고자 한다. 구술자의 답변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하는 때에는 무형유산위원회의 평가 3개를 중심으로 한 질문을 던져 해녀들의 삶을 관찰하고 들어보았다. 위와 같은 연구방법은 4월부터 8월까지 2회 이상 찾아가 구술자와 소통하고 그들의 삶을 함께 하며 진행되었다.

 3. 평가 분석

평가 분석에서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제주해녀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던 주요 3가지 이유를 분석하여 해녀의 구술 자료의 해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결정하고자 한다.

  1)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 평가는 무형문화유산의 특징11) 중 해당 무형문화유산이 공동체 및 집단에 정체성 및 지속성을 부여한다는 점과 문화 다양성 및 인류의 창조성에 대한 존중을 증진한다는 점과 양립한다. 즉, 제주해녀문화가 지역 공동체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통해 지역 내의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에 대한 존중이 증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도는 지역적 특성상 토양이 비옥하지 않은 화산섬 지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귤재배가 확대되기 시작한 1970년대 초 이전까지 제주의 경제를 책임졌던 것은 해녀들의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 하면 귤이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주해녀 또한 제주도가 갖는 지역의 독특한 정체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서는 바닷가 마을에서 행하는 의례인 용왕제의 일환인 영등굿12)과 잠수굿이 해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이러한 종교적 유대감이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결국 제주해녀문화는 제주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제주해녀들이 만들어 온 산물이다. 때문에 이는 제주도가 겪은 역사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의 비극적인 4.3사건은 제주해녀가 다른 지역의 해녀와 다른 특징을 갖는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이 제주해녀문화는 제주도의 자연적 특징과 역사적 사실로 인한 제주만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제주도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어떻게 제주해녀를 통해 상징되는지를 제주해녀의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한다. 

  2) 자연친화적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

해당 평가는 무형문화유산의 특징 중 공동체간 상호 존중 및 지속가능한 발전에 부합한다는 특징과 인간과 주변 환경, 자연의 교류 및 역사 변천 과정에서 공동체 및 집단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된다는 특징과 연관된다. 이는 시대의 흐름과 환경의 변화 속에서 서로 경쟁하며 자연을 소비하는 방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며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친환경적인 방법을 의미한다. 이러한 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관된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변하면 그 변화에 맞춰 새로운 자연친화적 방식을 찾아내고 계속해서 자연과 함께 공존해 나가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자연친화적 방법은 언어가 아닌 삶의 모습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제주해녀가 높은 평가를 받은 자연에 친화적이고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함께 공존하는 모습, 시대 변화에 따라 기술이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을 따르며 자연환경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물질하는 모습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3)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평가는 무형문화유산의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는 특징과 연결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서 ‘무형문화유산은 전통 문화인 동시에 살아있는 문화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무형문화유산은 세대를 거쳐 계속해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공동체와 생활 속에서 전승되는 모습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현재 제주도 전역에는 제주해녀문화의 주체인 해녀들이 각 마을마다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어촌계에 속해 있으며 주체적으로 해녀회를 구성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은솔 2018). 제주해녀문화가 이러한 공동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세대를 거쳐 전승되고 있는지 제주해녀들의 삶 속에서 알아볼 것이다. 

 

Ⅲ. 해석하며

‘해석하며’에서는 위의 평가 재해석에 따라 구술자들의 구술 자료 속의 제주해녀문화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

“4.3사건이 일어나분거라. 4.3사건이 몇 살에 일어나신고 하니깐 내가 5살 때 일어나분거라. 게난 우리 외할아버지가 나 손지가 나 하나뿐이여부난 너무 안타까운 거라. 5살에 해난거 내가 다 알아. 4.3 일어나난거.

북촌. 북촌에 사는디 사람들 다 나오라 하니깐 우리 할아버지네, 이모네, 외할아버지네 다 나간거라 학교마당에. 다 열 지어서 다 선거지. 난 어려부난 재기 못가주게. 우리 이모 손심엉 지릉지릉 막 끄서가는거라. 막 엎어지고 막 엎어져도 막 끄성가는거라. 재기 가야되니깐. 막 끄성가. 아이고 이모, 양말 떨어져수다 하면, 그 양말을 줍젠 하면 양말을 못 줍게 허여, 빨리 저디 가야된댄. 이추룩 하는디, 이젠 다 강 사니까 남자들을 '외줄로 쭉 서라!' 한거라. 우리 외할아버지네가  외줄로 쭉 선거라. 외줄로 쭉 서니까 그냥 나는 할아버지가 안타까우니까 막 할아버지 심부름 강이네 우리 외할망은 어디레 감댄 허멍 강 막 땡겨온거라. 경해부난 산거. 그냥 외할아버지 따라가비시민 나가 죽어불건디. 그냥 열지사 나가난 그냥 총살시켜분거라.“

(안○○ 해녀)

4.3사건을 겪은 후 안○○ 해녀는 가족들을 대부분 잃고 혼자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봤지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그 시기에 맨몸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은 바다에서의 물질이었다. 4.3사건은 제주도가 겪은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이는 제주도 해녀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4,3사건에 희생당한 사람은 13,391명이다. 이중 남자는 11,043명(78.7%)이고 여자는 2,985명(21.3%)이었다. 뿐만 아니라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의 총 피해 인구는 3만 명에 육박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제주도의 여성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경제 활동을 해야만 했고 사면이 바다로 쌓인 섬이라는 환경 또한 해녀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작용했다. 이러한 탓에 제주도는 여성들이 좀 더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서 제시하는 구술 자료 또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해녀 할 때는 제주 오기 전에는 조금씩 하다가. 나가 안하젠 했어. 물질하지 말앙이네 살아야지 했는디. 신랑신디 돈 탕 살젠 하니까 아니꼬는거라. 에에. 해녀하는 사람들이 아이고 하라게 하라게. 이녁냥으로 벌어 써라. 이제는 그거에 취미붙여 놓으난. 강 이녁 벌어오면 애기도 돈 주고 마음대로. 아방 조금 준거는. ‘거 다썼나 벌써?’ 그렇게 해여. 내가 벌어야지 주고 싶은 거주고. 겅 하멍 살았주게.”

(안○○ 해녀)

“우리가 해녀 작업하는 거는 자기가 남한테 구애를 안 받으려고 하는 거지 옛날에는 남자는 애기보고 여자는 생활권에 경제권에 들어갔는데 솔직한 말로 제주도는 섬이잖아 할 게 없잖아 그러면은 농사하고 그러면은 별로 수입이 안 됐언 그러니까 제주도분이 한 게 옛날에는 미역하고 우뭇가사리도 돈이 안 되고 오직 미역. 이제는 모든 해산물이 귀하잖아 그러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처음에는 솔직한 말로 살기가 힘들잖아? 그러다보니까 작업을 하게 된 거고. 남의 일 가는 것보다는 좋으니까 구애 안 받으니까 그러다보니까 작업을 하게 된 거지. 그 전에는 남의 일을 하러 가려면은 아무래도 자유롭지가 못하잖아. 애기 딸리고 아들 셋 딸리고 하니까 힘들지 아무래도. 그러니까 이제는 그때는 남의 일하러 가니까 일당 받앙 가니까 하루에 일당이 6천원 땐 거라. 우리 작업한지가 한 30년.⋯⋯6천원하면은 아무것도 아니잖아 겐디 바다에 작업을 가면은 물 때 맞춰서 가니까 하루 종일은 아니잖아 겅하다 보니까 그게 하게 된 거지. 그리고 집이 생활이 어렵고 처음에는 시집오니까 생활이 어려웠어. 그러다보니까 별로 안 되겠다 싶엉 직장일은 하려니까 애기 있고 하니까 못 가잖아. 겅하니까 이제는 작업에 뛰어드니까 아무래도 작업은 자유롭고 자기한 만큼 수입이 되니까 즐겁게 하는 거지”

(고○○ 해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계 중심의 혈연을 중요시하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를 따라 살아왔다. 개인은 가족을 위해 존재하였으며 특히 여성의 존재는 가족에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었다. 여성은 일생을 친족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활하여,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ego), 사회인으로서의 자아는 있을 수 없었다. 삼종지도, 칠거지악, 불경이부, 여필종부 등의 도덕률 하에서 여성들은 정절과 복종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도록 교육 받았고 여성들 스스로 자기 희생의 굴레 속에서 인내와 복종의 생활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이동원, 1979). 

하지만 제주도의 여성들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가부장제도 속의 여성이 아니었다. 제주도 부인들의 노동량은 육지에 비해 월등히 많다. 그런데 생산 노동을 통한 가계에의 기여도가 많을수록 가족 내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갖게 되므로, 제주도에서는 남편만이 경제력을 행사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규범과는 달리 남편과 부인의 엄격한 구별 개념이 약화되었다(한정운, 1986). 해녀들은 이렇게 경제적인 부분을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했다. 해녀는 ‘바닷 것은 수입이 확실하다’는 말 아래 자신이 한 일에 보상을 받으며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주해녀문화는 이러한 여성의 자유로운 경제생활과 탈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꽃 피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친정에서부터 우리는 학교 다닐 때 보면은 우뭇가사리를 했어 그때는 자유롭게 겅하면 학교 갔당 우뭇가사리 헐 때는 조퇴핸 가강핸. 겅하니까 작업을 하게 됐지 아무 이유없이 못하잖아. 겐디 그때는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호콤 덜 했어 중학교 다닐 때는 우뭇가사리 봄낭헐 때면은 우리 주로 방학써 조퇴해가지구 많이는 못해도 그때부터도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면 돈이 되잖아 겅하니까 그랬지.” 

(고○○ 해녀)

제주도는 과거부터 교육보다는 생계를 위한 물질이 더 우선이었다.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해녀들은 어린 나이부터 물질을 시작했다. 우뭇가사리 작업 시기가 되면 학교를 조퇴하고 작업에 참여했다는 고○○ 해녀의 말처럼 제주 사회에는 이런 해녀들의 사정을 이해해주는 풍토가 사람들의 인식 밑에 깔려있었다. 이러한 이해는 해녀들이 제주도의 경제를 책임져왔던 먼 과거에서부터 형성된 자연스러운 산물로 자리 잡아 이어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 환경 속 자신의 직업에 대한 해녀들의 인식과 정체성도 자유롭고 당당함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해녀질하는 건 재미가 이서 재미가 이시니까 있는 디서 내가 아프거든 근디 해녀질해러가면은 안 아파 왜냐믄 물 힘에서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강왕하면은 막 지치거든 겐디 해녀 좀 소라 좀 할때는 아니 지쳐 왜냐믄 욕심으로 이거 많이 하면 오늘 얼마 벌었다 하니께는 안 힘들어”

(안○○ 해녀)

“이제는 작업에 뛰어드니까 아무래도 작업은 자유롭고 자기한 만큼 수입이 되니까 즐겁게 하는 거지.”

(고○○ 해녀)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자유롭게, 자신이 한 만큼 보상받으며 물질하는 해녀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높은 만족을 가지고 있으며 해녀로서의 정체성이 긍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녀의 정체성은 해녀굿을 통해서도 형성되어왔다.

“음력으로 옛날 초여드렛날 해녀굿을 하지. 엄청 크게 허민 그때는 막 바로 왕 머 하진 못하고 저 먼디로 사진을 다 찍을 수 이서. 그냥 솔짝솔짝하게. 제라하게시리 하는 사람들은 서울서도 내려와. 서울서도 막 내려와그냉 카메라들 가져와그냉 하는 막 그런데 들어가서 장면을 막 사진을 찍어. 그추룩 하주게.”

(안○○ 해녀)

예전 해녀 속담에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해녀의 물질 작업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해녀들은 언제나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의지한다. 해녀들은 수시로 바닷가에 있는 해신당에 찾아가 제물을 준비하여 물질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한다. 그리고 영등달인 음력 2월에 영등신13)을 위한 영등굿을 한다(진쟁, 2018). 

제주해녀들의 신앙과 의례는 그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들은 물속에서 항상 숨이 끊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죽음과 함께 살아간다. 때문에 이러한 신앙과 의례는 여전히 남아 해녀와 그 지역공동체를 보호한다. 안○○ 해녀의 말처럼 김녕리에는 영등굿 외에 김녕리 자체의 해녀굿을 크게 벌인다. 해녀굿은 해녀와 제주 사람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내려와 구경할 정도로 유명한 행사이다. 이렇듯 제주해녀문화는 그들의 문화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부인과 외부인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김녕리 해녀회 자체의 이런 참여와 활동은 김녕리만의 특별한 해녀회 운영 방식을 통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천초작업은 각자 동마다 따로따로 하는데 우리 허무레작업은 동동네하고 서동네가 있어. 이제는 합해져서 동쪽 서쪽 해녀회로 해서 김녕에는 두 군데로 나뉘어요.”

(고○○ 해녀)

앞서 설명했듯이 김녕리는 다른 해녀회와 달리 넓은 바다 영역을 동, 서로 나누어 물질한다. 80명이 넘는 해녀들이 한 구역에서 모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동마다 바다를 8개로 나누어 가꾸며, 바다를 함께 공유하는 동김녕, 서김녕 해녀회로 나누어 활동한다. 이는 물질과 해녀회 활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해녀들 간의 소통을 강화한다. 

그러나 제주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공유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주민이 해녀의 삶에 대한 공감에 어려움을 보였다.

“(해녀에 대해) 너무 신성시되고 미화된 것이 아닌가. 그런 부분(등재)에 대해서는 아주 좋게 생각해요. 문화로서 지켜가야 하는 것은 맞다 생각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3년을 살면서 다른 제주도분들 말 많이 들었지만, 해녀들, 그러니까 어업에 종사하시는 분들 만의 그 부류와 문화가 있고, 농업이라든가 다른 사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것이 있고, 그런 것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해녀 문화 자체가 제주도를 대표한다, 제주 전체와 직결된다, 이런 부분은 좀 과장된 해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녕리 마을 주민 E씨)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지 3년이 된 이주민 E씨는 문화가 보전되기 위해 유네스코에 등재된 것은 긍정적으로 인식하지만, 해녀문화가 제주를 대표하는가에 대해서는 과장된 해석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해녀 자체는 문화이기도 하지만 결국 생계를 위한 직업이고 수단이기 때문에 바다를 배경으로 업을 삼는 다른 이들에게 배타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주민과 바다를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인식으로 해녀를 단순 미화, 신성시하는 것이 아닌 해녀의 진정한 가치와 삶이 공유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는 자연친화적 방법

물질 자체는 환경 친화적인 채취 활동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주해녀들의 물질 작업은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한다. 이는 해녀들의 얘기를 들을 때 물질 도구에 대한 설명과 물질하는 모습과 과정을 묘사하는 해녀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지름(기름)하는 배 아니여 저 거시기 풍선 돛달고 겅 내려성 댕기는 거여 기계 없이 살았엉 그냥 저기 노를 저성 댕겼어 예싸예싸 하멍 막 노저성 저기 해녀배 이거 고기 잡는 배왕 해녀는 옛날엔 기계배로 아니고 노 저성만 댕겼어 노저서 그냥 기계가 없어 겐디 그때 이후 중간에 해녀배 나서 기계 있쥬. 기계 없이 노만 저성 댕겼어 예싸예싸 소리하멍 그낭 나도 같이 댕겨 나써 기냥“

(김○○ 해녀)

전직해녀 80대 김○○는 자신의 유년시절 해녀의 모습을 위와 같이 표현한다. 이 표현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때부터 해녀들의 물질은 본래 자연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며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김○○ 해녀의 묘사처럼 기계배를 사용하지만 배는 멀리에 있는 해산물을 따라 해녀들을 데려다주는 역할만 할 뿐 여전히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된다. 이런 해녀들의 물질의 자연 친환경적인 모습은 물질도구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림 2> 안OO 해녀의 물질 도구

안○○ 해녀의 물질 도구를 보면 테왁 망사리, 오리발, 고무옷 등으로 구성되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바다를 해치는 도구가 없다. 더 많은 해산물을 채취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지만, 호흡을 돕는 장비의 도움 없이 물속에서 머무는 것은 욕심보다 환경을 더 생각하는 해녀의 모습이다. 이는 자신의 한계만큼, 즉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물질을 하도록 하여 제주해녀가 자연과 함께 공존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도구와 같은 기술적, 기계적 요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서도 자연친화적 방법은 돋보인다. 전체가 해마다 잠수 일수를 결정하고 작업 시간,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의 최소 크기를 정하며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9월 달부터 다시 물질 시작할거담. 소라는 그 때가 산란기거든 그래서 소라는 5월 말까지 하고 6월 달부터 그러지 산란기라서. 그러고 다른 물건들도 더워서 마찬가지로. 성게도 또 7월 달에 산란기잖아. 그래서 못 해. 겅하다 보니까 작업할 때 우리는 7월 달에 보말작업 했었어. 7월 18,19인가?”

(고○○ 해녀)

“10월 5일에 소라 잡는 기간이 되거든 전국적으로 금해부렀어 산란기라서 금해부니까 못해 이제 우리 만약에 어디가그넹 우리가 먹으려고 하믄 압수해부러 물에 돔가부러.”

(안○○ 해녀)

고○○, 안○○ 해녀를 포함한 모든 해녀 공동체 전체가 해안의 자원을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 작업 시기와 채취 해산물의 크기 등을 정하고 함께 작업하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동조한다.14) 이는 어느 지역의 어촌계든지 어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써 당연히 행하지만 제주에서는 이것을 어촌계와 해녀회가 서로 연합하여 이 약속을 지킨다. 어촌계 속에 해녀회가 포함되어 하나의 집단을 이루지만, 각자의 공동체가 가지는 역할을 인식하고 행동하여 함께 바다를 지키고 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 해녀의 구술처럼 바다지킴이가 있어 함부로 바다를 해하거나 공동규약에 어긋나는 행동에 제지하는 역할도 있다. 이러한 역할과 규약이 강제성을 띄고 행해진다면 공동체 안의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지만 모든 해녀들은 이러한 규약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동조하여 바다를 지켜나가고 있다. 마을 주민 A씨, B씨 또한 이에 공감한다.

“예를 들어 소라를 캐오잖아? 거기서 다 분리해가지고 그러니까 대중소. 그러면 중까지만 하고 소는 도로 바다에 버리고. 그런 거 있어.”

(김녕리 마을 주민 A씨)

“톳나물도 얼마 전에 저희들이 마을에서 전부 다 톳나물 작업을 다 했거든요. 했는데 그게 다 채취는 안했어요. 채취는 안하고 사람들이 와서 다 얼만큼의 정도는 그대로 두고 그리고 우리도 가서 욕심껏 많이 해오진 않아요. 한끼 내 반찬할 정도만 해오고 왜냐하면 또 내려가서 먹어야 될게 없고 또 내버려둔 게 자라고 있으니깐 그런 거지. 한두 번에 막 해가는 사람들은 처음 와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관광 온 사람들이지 마을사람들은 그렇게 싹쓸이 하듯이 절대 뭘 많이 하진 않아요. 남겨두는 습성이 있어가지고 바다에다가 맡겨두는 습성이 있어서 바다 힘으로 자라고.”

(김녕리 마을 주민 B씨)

위의 말을 통해 소라의 크기별로 분류하여 작은 것들은 바다로 돌려보며 다시 바다가 마르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함을 알 수 있다. 톳나물은 어촌계 관할의 채취 해산물로 마을 주민이 모두 채취할 수 있지만, 이에도 먹을 만큼만, 필요한 만큼만 채취하고 나머지는 살아가도록 돕는 마을 주민들의 전반적인 생각과 이를 뒷받침하는 풍습이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한다.

 3.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는 지식과 기술

공동체를 통한 전승은 주요 구술자들과 주변인들의 여러 번의 구술과 삶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구술사를 열기 위해 전체적 삶을 묻는 질문을 통해서 해녀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어릴 때 배우는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노는 게 바닷가밖에 노는 게 없었잖아요. 수영은 자동으로 하는 거고, 하다보니까 남이 하는 것 보고 같이 하는 거고 그렇게 시작하는 거고. 자연스럽게 공동체 안에 스며들었다고 보죠.”

(고○○ 해녀)

“우리 자연으로 배운 거여 뉘신디 배우고 안 배운 거 어서 ⋯⋯열 살만 되면은 막 히는 걸 배와. 이렇게 막 퐁당퐁당. 경 히는 걸 배우는 거라. 친구들이영. 돌을 던지면 어디꺼지 가는 거. 숨 안 쉬엉 물날로 어디까지 가는 거 영 소때해여. 그추룩 하멍 배우지. 경 해민 이제 한 열다섯쯤 나면은 태왁 앗아그냉 이제 조금씩 가는 거라. ⋯⋯열 살쯤 나면은 막 힘 배우고 막 허는 거 와그냉 행와그냉 경하멍 우리가 물질을 배운 거라. ⋯⋯그때는 테레비도 아무것도 없을 때난, 나는 친구들이 휘레 가자 휘레 가자 해여. 휘레 다 가. 우리는 자연으로 배운거지. 어멍들이 아니라. 여름에 해수욕장 가자가자 하는 것처럼. 여름나면 자연에 막 이래가. 기민 막 눈 그거 안 써 불면 눈이 빨강해여. 그렇게 하면서 배운 거지.”

(안○○ 해녀)

“15살부터 해녀 핸 게난 처음에는 물 헤치는 거 잘 몰라서 일만 하다가 우리 어머니가 일만 하도 해가니까 이제 힐청(헤엄칠 줄)도 모르는 거라 게난 바닷가에서 물 봉봉 하면서 저리 밭 서답하레 갔다가 물 봉봉하니까 그냥 우리 어머니가 거기로 밀어부난 그냥 퐁당퐁당하당 막 와가민 밀어부멍 그러다 힐청하당 물에질 배웠어 조금씩 조금씩 물에질 했어 우리 아버지네가 매역 하는디 바닷가에서 물에질해요 우리 아버지영 우리 어머니영 태왕가성 저 바닷가에 가서 이제 호콤 우리 아버지가 바당을 잘 알아 경하니까 나 이름이 순경아 물에 빠지면 요거 동사 아니여 핸행⋯⋯아니 그냥 통허지 않여도 이자 조금 힐충 아니까 나가 자연 상으로 기냥 물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그랬지”

(김○○ 해녀)

구술자들은 하나같이 모두 자연스럽게 체화 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가르쳐주는 대상 없이 홀로 배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배워졌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듯, 수영장에서 강사가 가르쳐주듯 직접 배우는 시간이 따로 있어서 습득한 것이 아니라 가정과 바닷가라는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고 배웠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해녀간의 배움은 한 번의 습득에서 끝나지 않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고○○ 해녀를 만났던 서김녕 해녀 탈의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림 4> 서김녕 해녀들의 성게 작업

고○○ 해녀를 비롯한 30명 남짓의 해녀들은 서김녕 해녀 탈의장에 모여 그날(5월 11일) 채취해온 성게를 함께 작업하였다. 그들은 그 곳에서 해녀회 간사님이 만들어두신 점심을 함께 나누며 당일 날 채취한 성게를 까는 작업을 하면서 함께 얘기하고 해녀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었다.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누고 배우는 장이 펼쳐진다.

더 나아가 다음의 구술들을 통해 해녀들의 공동체성을 살펴볼 수 있다.

“근데 우리는 우뭇가사리는 공동채취하거든 다른 데는 개인으로 하다 보면은 사고가 많잖아 근데 우리 김녕에는 공동으로 채취하니까 동으로 채취해서 동에는 2 주고 해녀는 8 받아 작업해영 그거 뜯어내고 사람 불렁 하당 보면 경비가 드니까 2 8제로 하지 2는 동에 주고 8은 해녀 분배해서 공동으로 갖는데 겅해부니까 이제 도에서도 우리 김녕에는 제주도에서는 최우수 어촌계로 겅했네 그렇게 해가지고 이번에도 여행가게 되는 거. 왜냐하면 도에서가 다른 걸로 준다는 걸 우리는 견학가기로 핸 나이 드신 분들 그거 어떻게 다 잡앙 먹을거? 거 다 클 때까지 혹시나 계실지 아닐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이번에 저 선진 견학으로 우뭇가사리하는 공장 같은 데 그렇게 해 우리는 김녕 어촌계는 우리 제주도에서 최고 어촌계야 공동 채취하니까 바다가 틀리니까 따로 하는 것도 있긴 해.” 

(고○○ 해녀)

제주해녀문화의 유·무형 요소들은 전적으로 해녀 공동체에 의해 전승되어 왔다. 앞서 말했듯이 해녀공동체는 해안의 자원 관리를 위한 공동규약을 만들어 작업일수, 채취 해산물의 크기 등을 규제한다. 또한 해녀들의 물질작업은 여러 위험요소가 많은 작업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서로 간의 협업과 배려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서로 간의 결속력을 강하게 유지시키며, 물질 작업뿐만 아니라 신앙과 관련한 의례를 함께 하고, 생활 전반을 공유하며 해녀들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고은솔, 2018). 

이러한 해녀문화의 공동체성은 지금까지 잘 전승 되어오고 있다. 고씨 해녀의 사례처럼 우뭇가사리를 공동으로 채취하고 2·8제 공동규약을 만들어 이익을 분배하는 모습이나 최우수 어촌계로 선정된 후 그에 대한 사례를 선진 견학으로 결정하는 모습은 여전히 해녀 공동체가 존속하고 그것이 형식적인 공동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들 사이에 끈끈한 정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해녀문화를 함께 살아가는 김녕리 주민들 또한 해녀의 공동체 문화를 묘사하고 있어 주요 구술자가 아니지만 덧붙여 서술해본다.

 

“어떤 부분이냐면 단체로 가잖아? 단체로 가면 예를 들어 상군 중군 하군이 있어. 상군들은 멀리 바다에 배타고 멀리 가서 바다에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하다가 호루라기 불면 다 같이 올라오는 거지. 공동체라는 것이 한사람이 빠지는 것이 아니고 똑같이 움직여야 돼. 그래야 그게 공동체가 되고 해녀라는 게 다 체계적으로 되고 그냥 차차차차차 되는 거지. 그냥 뒤죽박죽 먼저가고 늦게 가고 그런 게 아니라 들어가는 시간도 똑같고 나오는 시간도 똑같고 그게 공동체. 해녀들이 우리 김녕 마을 만도 아니고 다른 마을에도 어느 날은 물질 할 것, 어느 날은 안할 것, 그런 것이 다 있어. 어느 날은 소라 따는 날., 어느 날은 성게 따는 날, 그것도 다 있고 그러니까 그것이 잘 된 거지. 그런 거는 너무 잘된 것 같아.”

(김녕리 마을 주민 A씨)

“그리고 여기 일렬로 우뭇가사리 있잖아요. 우뭇가사리를 전체적으로 해녀들이 다 따요. 다 따고 바다에 밀려오는 것들도 해녀들이 다 줍거나 젊은 사람들이 가서 주우면은 그게 다 수입원이잖아요. 그게 다 수입원이 되지만은 일부러 파도치거나 많이 밀려올 때는 그냥 놔둬요. 우리 연로하신 노인네들이 지팡이 짚고 바다를 예전에 다니시던 분들이 떠밀려온 것을 가져가실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거죠. 그런게 암암리에 이렇게 문서적으로 남겨져있지만은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서도 그럴껄요. 우리 마을에서는 그게 암암리에 마을에 공동재산이긴 하지만은 노인들이 내려와서 채취해가는 거는 뭐라 하진 않아요. 그냥 노인들이 소일거리로 당신이 다니던 바다에 대한 향수같이 가져가는 걸 그냥 두는 거죠.”

(김녕리 마을 주민 B씨)

마을 주민 A씨의 말을 통해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규제하고 관리하는 전통이 아직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각자 따로 일정을 잡아서 물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아 해녀 공동체의 결속력은 아직도 견고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을 주민 B씨의 인터뷰에서 해안가로 떠내려 온 우뭇가사리를 해녀들이 전부 다 채취하지 않고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전직 해녀들을 위해 남겨 놓아서 그들이 조금이나마 수입을 얻고 한 평생 몸 담았던 바다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해녀의 ‘할망바당’의 공동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든 주변 이웃까지 생각하는 마음은 과거 바다의 한 구역을 정하여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마을일에 수고하는 이장에게 주는 ‘이장바당’과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육성회비를 충당해주는 ‘학교바당’도 사회 공익에 대한 헌신과 참여의 정신이 지금까지 내려 온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해녀들을 보는 마을 주민들의 인식은 다양하지만 비슷하게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는 제주해녀문화에 긍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제 공동체라면 자기 기술에 따라 버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욕심이 없어요. ‘넌 깊이 들어가니깐 잘 버는구나.’하는 시기심이 없다는 거지. 이 자기 기술만큼 벌어드리는 것에 대해가지고 아무런 질투가 없다는 거지. 그게 공동체지.”

(김녕리 마을 주민 C씨)

“서로, 공동으로 하는 것이 정해져있다는 것이,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그런 거죠.”

(김녕리 마을 주민 D씨)

위와 같이 많은 이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전직해녀들에게는 이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제주해녀문화의 가치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유네스코 등재가 현직해녀들에게만 혜택이 있고 그동안 해녀로서의 삶에 대한 인정과 문화를 쌓아온 수고에 대한 보상이 없음을 아쉬워한다.

“(제주해녀문화는) 옛날사람들이 고생해서 이뤄 논거야 지금 현재 해녀만 혜택을 보고 있다는 거지 정년퇴직 이런 게 있어야 돼.”

“(등재된 것이) 마음이 찡하고 좋기는 좋았는데 우리한테 이익 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우리는 현직이 아니고 전직이나네.”

“그래도 옛날 해난 사람도 뭐 해줘야지.⋯현직 전직 나누고 나는 그것도 기분 나빠.”

(김녕리 전직해녀 F, G, H씨)

전직해녀들은 제주해녀문화의 기틀을 잡고 함께 만들어 온 공동체 일원이었는데 유네스코 등재에서 현직해녀에만 초점을 두고 혜택을 주는 것에 불만을 표출했다. 세대와 세대 간의 전승을 중요시하는 무형문화유산의 특징과 다르게 오히려 등재로 인해 전직해녀와 현직해녀 간의 이해관계를 불러일으켜 세대 간의 유대감이 위협되고 있다.

세대 간에서뿐만 아니라 지역 차이에서도 맹점을 확인할 수 있다. 김녕 어촌계는 2018년 9월 제주바다 환경대상에서 전체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바다 환경을 가꾸며 수산 자원 보호에 노력을 기울이는 어촌계이다. 이러한 어촌계 안에서 해녀회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다보니 해녀 간의 공동체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 해녀회의 공동체성은 많이 무너져있다.

“월정부터 저쪽으로는 다 개인, 공동이 아니고 그 대신, 물에 들면 낚아서 올라오는 식으로 개인플레이. 거기는 개인. 1년에 해녀 사고 나는 거 보면 저쪽 종달, 하도 쪽에서 사고 나는 거. 헛무레 안하다가 천초시기만 되면 그냥 막 갑자기 와서 욕심내니까. 그러다보면 돌아가시는 분들 60대에서 70대 초반.“

(김녕리 마을 관계자 I씨)

현재 해녀의 연령이 고령화되고 현직해녀가 줄어들면서 많은 해녀회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대부분의 해녀회에서 공동채취와 공동분배가 사라지고 개인이 혼자서 물질하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해녀들의 사고도 잦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주해녀문화가 제대로 남아있는 해녀회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Ⅳ. 마치며

본 연구에서는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높게 평가받은 세 가지 항목들이 제주해녀의 실제적 삶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제주의 살아있는 역사인 해녀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중요한 부분들이 해녀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지를 알아보고 해석해내고자 하였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가 제주해녀문화를 가장 높게 평가한 점은 ‘제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한다는 점, 자연친화적으로 지속 가능하다는 점,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이다. 연구자는 이러한 높은 평가를 받은 항목들이 실제 제주해녀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점을 보여주며 제주해녀문화가 제주의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심층면접을 실시하여 해녀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았다. 

자료 수집은 2018년 4월부터 8월까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지역에서 3명의 주요 구술자를 대표로 이루어졌고 그 외 기타 면접자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에 따라 얻어진 자료에 대한 분석은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의 평가를 바탕으로 해석을 진행하였고 자료 수집이 끝난 이후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본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해녀문화는 제주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한다. 이는 해녀 구술자의 구술을 통해 알 수 있었다. 4.3사건에서 가족들이 희생당하고 살기 위해 해녀를 시작했다는 안○○ 해녀의 말에서 제주가 겪었던 큰 아픔이 고스란히 제주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들에게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제주해녀는 이러한 사건을 겪으며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강인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있었다. 또한 그들은 제주도의 경제를 책임졌던 경제의 주체였기 때문에 제주해녀는 과거 우리 사회의 지배적 질서이던 가부장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제주해녀가 믿던 신앙과 의례도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이다. 항상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물질하는 환경에 처해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무속 신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계속 물질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던 원동력이었고 지금도 그 신앙과 의례가 남아있음을 면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둘째, 제주해녀문화는 자연친화적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한다. 해녀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이 만들어 온 전통에 따라 과학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고 자연이 주는 만큼만을 채집하여 자연과 공존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자신들의 일터인 바다가 오염되지 않도록 바다를 청소하는 활동을 지속한다. 이러한 점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돕는 것이 없어 자신의 한계만큼의 물질을 하게 된다는 점과 해녀들이 공동으로 금채기를 두어 물질한다는 증언에서 자연의 지속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채집한다는 것이다. 

셋째, 제주해녀문화는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하여 전승된다. 본 연구에서 면담을 진행했던 해녀들에게 해녀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질문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유사했다. 따로 배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익혔다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가족 중 해녀가 있어서 물질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며 익혔다는 것이다. 해녀 기술은 지식의 전달처럼 교육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니다. 삶의 현장인 바다에서 자연스레 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다를 끼고 살아가니 자연스럽게 바다와 친해지고 해녀라는 공동체에 스며드는 것이다. 제주의 독특한 문화인 궨당문화15) 또한 지역공동체 안에서 가족과 마을 주민들과의 가까운 관계를 통해 제주해녀문화가 자연스럽게 전승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 때문에 해녀 문화는 그러한 경향을 타고 전승되었다. 또한 제주해녀의 특색은 공동으로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타 지역의 해녀들이 독립적으로 물질을 하는 반면 제주도는 해녀 공동체를 통해 함께 일을 하고 서로의 대소사를 챙긴다. 이러한 점은 제주해녀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가 자연스레 전승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를 통해 제주해녀문화유산에 대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위원회의 평가가 해녀들의 삶에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주해녀는 제주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그들이 생활하는 터전인 바다를 가꾸며 자연과 친화적인 방법으로 물질을 지속해 나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기술과 문화가 공동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제주해녀문화의 가치를 연구하면서 숨겨진 맹점도 드러났다.

첫째, 제주해녀문화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 모든 이들과 공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본론의 이주민의 말을 통해 제주와 해녀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제주해녀문화의 정체성이 낯섦을 알 수 있다. 또한 바다를 배경으로 직업을 삼고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어업인과 제주의 땅을 일구어 나가는 농업인에게는 제주해녀만을 향한 찬사는 과장된 해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전직해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해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있었으나 등재 이후, 전직해녀에 대한 제주특별자치도의 국가적, 제도적 차원의 대우와 혜택이 현직해녀에 비해 현저히 떨어져 전직해녀는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제주해녀문화를 일궈온 것은 전직해녀들의 삶이지만 그들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지지 않아 전직해녀들의 불만이 존재한다.

셋째, 지역에 따라 제주해녀문화의 모습이 많이 무너지고 있다. 제주해녀문화가 잘 녹아있는 대상으로 해녀회 활동이 활발한 김녕리 해녀들을 선택하여 연구하였기에 제주해녀문화를 그들의 삶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른 해녀회의 모습은 삶이 변함에 따라 문화와 종교 등의 다양한 모습을 만들게 되면서, 때로는 공동체성이 무너져 개인적으로 물질을 하는 지역도 많아졌다.

이와 같은 맹점 속에서 제주해녀문화가 제주의 올바른 문화와 역사로 이해받고 전승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국가적 차원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의 경우 특히나 이주민과 외지인들의 유입이 많은 공간으로, 제주를 알지 못하고 제주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거리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요구된다. 제주에서 평생을 보내오고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제주도민, 그러면서 제주만의 가치를 담은 제주해녀와 그들의 문화를 통해 제주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또한 전직해녀에 대해서도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도 차원의 넓은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술사로 살펴보는 해녀의 삶을 연구하는 데 있어 미흡했던 점들과 한계가 있다.

첫째, 본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을 모든 제주해녀의 공통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본고는 연구의 결과를 일반화에 둔 것이 아니라 심층면접을 통해 얻어진 자료를 유네스코의 평가에 따라 해석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또한 김녕리에 거주하는 해녀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제주도 전체에 대한 대표성을 가진다고 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둘째, 본 연구의 결론처럼 제주해녀문화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높은 평가를 받은 점들에 부합하고 있지만 제주해녀문화가 변화하는 모습은 담지 못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유네스코가 제주해녀문화를 높게 평가했던 항목들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이를 연구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현재 제주의 무속신앙 전반은 서서히 약화되고 있다. 영등굿도 연례행사처럼 “치르는 느낌”이며 이제는 타 종교 믿는 해녀들도 영등굿에 참석하는데 그 자체가 굿이 “행사화”된 증거가 아니겠냐고 하였다(강대훈 2017). 이러한 변화를 심층적으로 연구하여 제주의 전통적 해녀문화가 현대로 오면서 변화하는 양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한 해녀와 구술사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참 고 문 헌

•강대훈(2017), 「“곱게 갑서, 다시 오지 맙서” : 제주 성산읍 해녀들의 바다거북 인식과 무속적 조상신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강영수(2016), 『바다에서 삶을 캐는 해녀』, 정은출판

•고영자 외 4인(2014), 「숨비질 베왕 ᄂᆞᆷ주지 아녀」, 제주특별자치도

•고은솔(2018), 「제주해녀문화의 지속가능한 전승방안 연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박재환(1994), 『일상생활의 사회학』, 한울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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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홍(1998), 「완도에 정착한 제주해녀의 생애사」,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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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인(2011), 「구술생애사를 텍스트로 만들기」, 한국문화인류학 44(2)

•유철인(2017), 제주해녀의 유산화 –무형문화유산과 세계농업유산-, 2017 제주해녀문화 국제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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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림(2006), 「새로운 역사쓰기를 위한 구술사 연구방법론」, 아르케

•윤택림(2009), 「구술사 연구 방법론」, 『충북대학교 국가위기관리연구소 학술세미나』

•윤형숙(1994), 「생애사 연구의 발달과 방법론적 쟁점들」, 배종무총장퇴임기념사학논총

•이선화(2016), 「제주해녀 생애사의 스토리텔링을 통한 문화콘텐츠 활성화 방안」, 제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진쟁(2018), 「제주해녀 이미지의 관광자원 활용가치 탐색 : 표본조사에 따른 집단차이 분석을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유산과(2017), 『2017년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 해녀문화유산과(2016), 『고등학생이 기록한 제주해녀 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한정운(1986), 「전통적 여성역할 규범에 대한 제주도 여성들의 태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한정훈(2012), 「빨치산 구술생애담 연구」,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해녀박물관(2015), 『제주해녀』, 해녀박물관

•Personal Narrative Group(1989), 「Interpreting Women's Lives: Feminist Theory and Personal Narratives.」, Indiana University Press.

•유네스코와 유산 홈페이지 http://heritage.unesco.or.kr/

•제주 해녀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jeju.go.kr/haenyeo/index.htm

•한국구술사학회 홈페이지 http://www.koha2009.or.kr/

1) 해녀들이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로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2) 2006년 제민일보가 주최한 해녀심포지엄에서.

3) 나잠(裸潛)이라는 말은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어로(漁撈)는 고기나 수산물 따위를 잡거나 거두어들이는 일을 뜻한다.

4) 바닷가 마을에서 행하는 의례인 용왕제의 일환으로 영등신을 맞이하여 어업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비는 해녀굿.

5) 공동어업권자의 어장에서 공동어업을 할 수 있는 권리.

6) 관련된 지식은 가정, 학교, 해당 지역의 어업권을 보유한 어촌계, 해녀회, 해녀학교와 해녀박물관 등을 통해서 젊은 세대로 전승되고 있다.

7)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기준(5개) : ⓛ무형유산협약 제2조에서 규정하는 무형문화유산에 부합할 것 ②대표목록 등재가 해당 유산의 가시성 및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문화 간 대화에 기여하며, 아울러, 세계 문화다양성 반영 및 인류의 창조성을 입증할 것, ③신청유산에 대한 적절한 보호 조치가 마련되어 있을 것, ④관련 공동체, 집단, 개인들이 자유롭게 사전 인지 동의(free, prior, informed consent)하고, 가능한 최대한 폭넓게 신청과정에 참여할 것, ⑤신청유산이 당사국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어있을 것

8) 네이버 지도 첨부 (http://map.naver.com)

9) 도청 해녀문화유산과 담당자와의 면담을 통해 김녕리가 어촌계와 해녀회의 연합과 해녀굿의 보존도와 참여도가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 김녕리 어촌계 현직해녀 현황은 동김녕 46명, 서김녕 41명으로, 제주도 현직 해녀의 수가 3,985명(*제주특별자치도 해녀관련 통계자료-2017.12)인 것을 볼 때, 102개의 어촌계 중에서 평균 이상의 현직해녀 수를 보유하고 있다.

11) 유네스코 무형유산협약 제2조 1항에 의하면 무형문화유산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승, •인간과 주변 환경, 자연의 교류 및 역사 변천 과정에서 공동체 및 집단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조, •공동체 및 집단에 정체성 및 지속성 부여, •문화 다양성 및 인류의 창조성 증진, •공동체간 상호 존중 및 지속가능발전에 부합

12) 영등신을 맞이하여 어업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비는 해녀 굿.

13) 영등신은 해상의 안전과 해녀와 어부들에게 풍어를 가져다준다고 믿는 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루 제주도로 들어와 바닷가를 돌면서 미역, 전복, 소라, 천초 등의 씨를 뿌려 해녀들의 생업에 풍요를 주고 같은 달 15일 우도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진쟁, 2018).

14) 김녕리 어촌계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김녕리 어촌계 해녀회는 매월 음력 7일, 22일부터 시작하여 7일간 물질기간으로 잡고 함께 작업하고 있다. 소라나 우뭇가사리 등 공동채취와 산란시기에 따라 변동되곤 한다.

15) 궨당이란 혈연이나 결혼으로 맺어진 친인척으로, 과거 제주도는 마을 전체가 가족과 친인척으로 맺어진 경우가 많았다.

류인선, 김성준 (사회교육과 일반사회교육 전공3)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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