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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이윤기 역, 열린책들, 2009)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1946)는 20세기 그리스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대표작이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에서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호메로스, 붓다, 니체, 베르그송 그리고 조르바를 들고 있다. 이들 중 조르바는 성인이나 사상가 혹은 작가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러나 그는 카잔차키스에게 진정한 스승이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석탄연료가 부족해지자 카잔차키스는 갈탄사업을 벌이는데, 이때 조르바와 6개월 간 같이 지냈다. 카잔차키스는 그로부터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얻는다. 카잔차키스에 의하면 그는 “글 쓰는 사람이 구원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카잔차키스보다 13살 많았던 그는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 “창조적 단순성”,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 “신선한 마음과 분명한 행동력”, “결정적인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도 더 깊고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의 소유자였다. 갈탄사업이 망하자 조르바는 세르비아에 정착하여 류바라는 젊은 과부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그 후 조르바의 사망소식을 들은 카잔차키스는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조르바를 부활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 탄생한 작품이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분명 조르바에 대한 오마주이다. 그러나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조르바의 가르침은 신의 죽음을 선언하면서 초인을 통해 대지, 육체(몸), 삶에 대한 사랑을 주장한 니체의 사상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그는 젊은 시절 “가장 중대하고, 가장 굶주린 순간에” 니체가 “견실하고 용맹한 자양분을 주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니체의 사상을 전달한다.

<신은 죽었노라.> 심연의 언저리로 우리를 끌고 가서 그대가 말했다. 희망은 오직 하나,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초월하여 초인을 창조해야 한다. 〔…〕신은 죽었고, 그의 왕좌는 비었으니, 우리들은 스스로 신의 자리에 앉으리라.〔…〕초인이 위대한 희망이다.

일인칭 화자인 바실이 조르바를 만나 크레타에서 1년 남짓 함께 한 이야기가 소설의 내용이다. 바실은 불멸의 영혼, 즉 영원한 진리를 추구해온 지식인이다. 그러나 “내 섬약한 손과 창백한 얼굴, 피투성이가 되어 진창을 굴러 보지 못한 내 인생이 부끄러웠다.”는 고백에서 알 수 있듯 바실에게는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 경험이 없다는 것은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말이다. 조르바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지식인 바실과 정 반대되는 인물이다. 학교를 다닌 적도 없는 그는 세상 안 가 본데가 없으며, 그리스-터키 전쟁(1897)에 참전하여 살인까지 하는 등 만고풍상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칼로 자르듯〔…〕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그는 현재, 즉 “여기, 이대로”를 중요시 여긴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룏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그에게는 하느님도 없고 악마도 없다. 그는 딱 한 가지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한다. 죽는다는 것은 그냥 촛불이 꺼지는 것이지만 늙는다는 건 창피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먹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먹지”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 한 마디로 촛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지상에서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조르바의 인생관이고, 니체가 말하는 초인사상의 핵심이며, 호라티우스가 말한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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