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는 보행자가 우선

공과대학에서 교양강의동으로 내려오는 대부분의 차량들이 과속을 하고 있어 구성원들의 안전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박 병 욱   행정학과 교수

늦겨울 매화, 초봄 산수유가 지고 눈부신 봄의 절정을 알리는 왕벚꽃이 한창이다. 공직에서 자리를 옮겨 만 2년남짓 제주대학교 캠퍼스에 몸담으면서 여러 가지 느낀 소회가 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학내 보행자, 장애인 교통참여자 배려에 대한 학내 교통의식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작년 여름쯤 전동 휠체어로 이동하는 학생이 캠퍼스 도로상 차량운행시 서행을 부탁하며 대학 정문 앞에서 며칠 간 1인 시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캠퍼스 도로 중 제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 학생회관 ~ 아라뮤즈홀 ~ 신축 학생회관을 잇는 도로(이 도로 가로수 이름을 따 ‘구실잣밤나무 길’ 이라고 하겠다)에서 일반 외부도로처럼 시속 50km, 심지어 시속 60km 가까이 주행하는 차량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 길은 긴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가 시작과 끝점, 아라뮤즈홀에만 설치돼 있다. 이 외에 공과대 4호관에서 교양강의동, 간호대학 방면으로 내려오는 차량들도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 곳은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 방지턱이 짧은 간격으로 다수 설치돼 있는데도 사정이 그렇다. 교양강의동에 수업을 갔다가 아찔한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캠퍼스 도로 이용문화는 우리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우리 제주대학의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잣대이다. 그런데도, 캠퍼스 내에서 이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제주대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거나 토론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2조 “도로”의 정의에 따라 대법원은 「도로라 함은 도로법에 의한 도로, 유료도로법에 의한 도로, 그 밖의 일반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일반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은 현실적으로 불특정의 사람이나 차량의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로서 교통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교통경찰권이 미치는 공공성이 있는 곳을 의미하고, 특정인들 또는 그들과 관련된 특정한 용건이 있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고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장소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2010. 9. 9 선고 2010도6579 판결)

도로교통법상 교통시설물인 횡단보도(제10조), 차선, 차로(제14조), 중앙선의 설치권자와 차량 속도제한(제17조) 부과권자는 지방경찰청장이다. 대학구내 교통시설물들은 제주대학이라는 공간의 자주적 관리를 위해 제주대학이 임의로 설치한 것으로 캠퍼스에서는 이 임의시설물의 관리나 관련 교통규제 영역에서 일반 교통경찰권이 미치지 않는다.

종합컨대, 제주대학내 캠퍼스 도로는 정문, 후문에 차단기가 설치돼 있고, (대법원 2006.1.13. 선고 2005도6986 판결; 2017. 12. 28 선고 2017도17762 판결), 특정인이나 특정한 용건이 있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으며, 제주대학에 의해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장소의 도로로서, 그 용도가 일반교통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4도6779 판결)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로 볼 수 없다. 제주지방경찰청(교통과)에서도 공항방문객이 사용하는 공항 앞 노상 주차장은 차단기가 설치돼 있고 특정한 용건이 있는 사람만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아 ‘도로교통법상의 도로’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대학 캠퍼스 내 도로도 마찬가지로 본다.

도로교통법상의 규제는 도로 위에서의 교통, 보행자 이동에 관한 것으로 제주대학 캠퍼스 도로에서는 차량이 중앙선침범, 속도위반, (보행자가 있는 경우) 횡단보도 주행금지,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보행자와의 안전거리 확보 및 서행, 차량 앞지르기 방법을 위반하더라도 도로교통법에 의한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학내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인적 피해를 야기하더라도 차량보험에 가입돼 있는한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는 공소조차 되지 않고, ‘도로교통법상 도로’가 아니라 중대 12개 교통법규 위반으로 처벌될 일도 없다. 

그렇다면, 제주대학 캠퍼스 내 도로는 차량을 위한 무법천지인가 ?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임의시설물로서의 캠퍼스 내 도로, 횡단보도, 속도제한 교통안전표지판은 우리 제주대학교 구성원이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캠퍼스라는 장소에서 보행자의 안전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차량이동 편의를 위해 설치한 것이다. 「제주대 교통관리지침」 제9조(2017.8.16. 제정)도 학내 시속 20km 이하 서행, 경음기 사용금지, 앞지르기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캠퍼스 도로’는 차량의 이동·통행권을 중요한 요소로 인정해 주는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보다 보행자가 이동·통행에 있어 훨씬 더 강하고 우선적인 권리를 가지고, 횡단보도가 없는 캠퍼스 도로에서도 그러한 점은 관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차량 과속운행이 빈번하게 행해지고 횡단보도가 없는 구간이 많은 ‘구실잣밤나무 길’을 운행할 때 이런 점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에서도 ‘보행자는 도로교통법상의 횡단보도(지방경찰청장 지정)가 설치돼 있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가장 짧은 거리로 횡단하여야 한다’(도교법 제10조 제3항)고 규정하고 있는 마당에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도 아니고 차량신호등도 설치돼 있지 않은 ‘구실잣밤나무 길’과 같은 ‘캠퍼스 도로’에서는 횡단보도가 없더라도 보행자가 짧은 거리로 횡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당연하다. 캠퍼스내 횡단보도가 설치돼 있는 곳에서는 차량은 반드시 일시정지해야 한다는 것도 불문가지다. 물론, 보행자도 학내 차량을 이용하는 구성원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 가급적이면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캠퍼스 도로’에서의 보행자 보호의 강도, 시속 20km 제한속도, 차량신호등을 설치할수 없다는 점, 기타 면학분위기 조성과 같은 캠퍼스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장애학우가 전동휠체어로 ‘캠퍼스 도로’를 이동하는 경우 학내 구성원의 합의를 전제로 「제주대 교통관리지침」에 반영해 ‘캠퍼스 도로’의 교통참여자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 합의가 「제주대 교통관리지침」에 반영되기 이전이라도 학내 도로상 모든 차량은 장애학우가 사용하는 전동 휠체어와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며, 장애우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서행해야 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제주대 교통관리지침」은 위반해도 형사처벌, 심지어 행정처분(면허취소·정지, 과태료, 벌점) 대상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제주대 구성원의 자주적 관리권에 기한 보행자 안전을 위한 차의 교통관련 약속을 어기는 것은 도덕과 지성을 갈고 닦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우리 스스로의 양심에 반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대학구내 도로 교통사고로서 차량보험에 가입돼 있다 할지라도 업무상과실, 중과실로 교통사망사고를 야기한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형사처벌되며, 차량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차의 교통으로 업무상과실, 중과실로 상해를 야기한 경우로서(and) 뺑소니, 음주측정 거부를 한 경우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된다는 점은 충분히 숙지할 필요가 있다.(형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또한, 2011년 시행된 도로교통법(2010.7.23. 개정)에 따라 ‘도로교통법상 도로’ 가 아닌 곳에서의 음주운전(제44조), 약물 등으로 과로한 때의 운전(제45조), 뺑소니(제54조 제1항)의 경우 차량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형사처벌된다. (도로교통법, 교특법)

헌법상 ‘대학의 자치’(제31조 제4항), 총장 동의없는 학내에서의 ‘교원의 불체포 특권’(현행범인 제외)(교육공무원법 제48조), 대학(총장)의 공법상(경찰상) 가택권 (김성태, 공법상 가택권, 홍익법학 제13권 제4호, 2012)을 거론하기 전에 대학의 자주적 관리권에 기한 도로관리 수준은 우리 제주대학교 구성원의 지성과 양식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나 자신, 친구, 동료의 안전을 지켜주는 캠퍼스 도로상의 학내 교통약속을 우리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제주대학을 방문한 손님들이나 택시기사, 배달오토바이가 난폭운전을 하더라도 우리는 뭐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몇 년전에는 학내 교통사고로 한 학우가 평생 보행장애를 지고 살아야 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한 번으로도 지나치다. 우리 제주대 구성원들의 양심과 지성을 믿어 보자. 구성원들이 함께 ‘캠퍼스 도로 보행자 우선 교통문화 캠페인’도 해봄직하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