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크고 작은 갑질의 경험이 있다 반성을 통해 더 큰 갑질을 막기를

조홍선

중어중문학과 교수

갑질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 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이라 되어 있다.          

최근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들 의 갑질이 엄청난 비난을 초래하고 급 기야 한 대기업의 운명이 바뀌는 걸  보면 갑질이 결코 작은 잘못은 아닌  듯하다. 갑질의 의미를 약간만 확대해 보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만 의 행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위   중에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상대방 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지 않고 모종의 행위를 함으로 써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안기는 모든 행동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악플 달기(덕분에 화장실 낙서가 많이 사라진 건 순기능이라 할까), 운전 중 차선 무단 변경, 불법 주차, 노상 흡연, 쓰레기 무단 투기, 대중 시설물 사용 후 방치 등등 모두 자신의 편의만 생각한 나머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행위로 갑질의 일종이다. 이런 경우를 당하거나 목격하면 불쾌감을 훨씬 넘어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순간 나 자신은 갑질한 적이 없었나 하는 의문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나는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방향지시등을 켰던가, 쓰레기는 항상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더라도 분리수거는 제대로 했던가, 담배는 피우지 않으니 그나마 안심이고, 공공시설 이용 후에는 어떻게 했더라……. 글쎄,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동시에 나는 행여 갑질을 했더라도 그것이 고의가 아니라 무의식 중에 저지른 실수였다고 되지도 않을 변명을 해본다. 아, 아Q!

글의 방향이 슬그머니 바뀐다. 갑질하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위해 시작된 글이 혹 실수였을 수도 있으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칼날이 무뎌진다. 나라고 갑질을 전혀 안 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실수로 범한 갑질이라 애써 변명한 갑질이 이다지도 숱하게 떠오르는 마당에 그 외에 저질러 놓고 인식하지도 못하는 갑질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겁난다. 게다가 지구나 환경에 범한 갑질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고의로 걸핏하면 갑질하는 자(者)들도 있지 않은가. 아니 그자들은 이제 보니 언급할 가치도 없다.

불혹의 나이를 한참 넘긴 어느 날, 전혀 불혹이 되지 않아서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나는 아직도 불혹이 안 되느냐고. 친구는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하는 경지는 공자의 경험이었다고, 공자처럼 날마다 자신의 행위를 몇 번씩이고 되돌아보던 사람만 그 나이에 가능했던 경지라고 답해주었다. 불혹, 지천명이 이 정도면 이순이니 종심소욕이니 하는 단계는 어찌 하란 말인가. 이제 나는 오늘 하루 나의 모든 행위에 대해 갑질이었던가 아니었던가를 수없이 되돌아봐야겠다. 불혹, 지천명은 놓쳤어도 이순과 종심소욕은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모든 인간에게는 갑질의 유혹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능처럼 DNA처럼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아니, 남 이야기 할 것 없고. 내 안에 만큼은 나도 몰랐던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갑질 DNA가 내재되어 있음을 새삼 느낀다. 바늘도둑만 소도둑 되는 게 아니라 바늘 갑질러 역시 소갑질러나 프로 갑질러 되는 법이리라. 혹 강의실에서 나의 갑질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계시다면 부디 부디 용서하시라. 나의 갑질은 실수였거나 갑질인지도 모르고 저지른 죄악이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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