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통계에 의하면, 한국은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로,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 37.5명이라고 한다. 특히 10대-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다. 이 가을에 유명인 젊은이가 또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렇게 떠나가는 젊은이들은 모두 우리의 귀한 딸이고 아들이며 제자들이다.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웠으면 스스로 삶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살아내기 어려운 사회라고 한다. 소중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것이 삶이지만 마주한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주지 못한 사회적 책임을 절감하는 때이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젊은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행복지수’는 몇 년 전 조사에서 OECD 34개 국가 중 32위로 나타났다. 작년, 156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민행복도’ 조사 결과에서 한국은 57위였다.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행복이다.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종교나 철학, 그리고 사상에 따라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였고, 그 행복의 내용과 방법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인간이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근대 이전의 행복담론은 특정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논의였고, 근대 이후에야 보통사람들의 행복담론이 가능해졌다. 한국은 서구의 ‘긍정심리학’이 도입된 2000년대부터 본격적인 행복담론이 형성되었고, 이후 ‘행복’은 한국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만족/욕망’이라는 행복 공식에 의하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욕망을 다 만족시키거나 욕망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욕망을 줄이는 것이 가능성이 더 크다. 수양을 통해 얻어지는, 유교에서 말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가 그러한 방법의 예이다. 물론 행복을 위해서는 인간적 삶을 위한 최소한의 객관적 조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경우, 객관적 조건의 결여보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불행이 더 문제가 된다. 즉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상대적 비교에서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행복을 찾는 노력이다. 삶은 언제나 성공적이지도, 언제나 실패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좌절하고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나서 노력하는 태도, 이른바 ‘회복탄력성’이 요구된다. 이것은 시련이나 고난, 위기나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이다. 삶은 원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해도 책임이 따르며, 행복이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수양하며 연습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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