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기고]  학술지 오픈액세스 출판의 필요성

박서현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제주대 중앙도서관에서 학술논문 유료서비스 업체인 누리미디어(주)의 학술정보서비스 디비피아(DBpia)를 이용하지 못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다. 제주대도 포함되어 있는 국공립대학도서관협의회와 누리미디어의 구독료 협상 결렬로 인해 디비피아에서 유통되는 많은 논문들을 도서관에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논문을 이용하지 못해 생기는 피해는 너무도 분명하다. 기존 연구성과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구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 논문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을 막는 것은 연구의 질적 저하와 양적 축소를 낳는다. 

물론, 대학과 상용DB업체의 협상 결렬은 금년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에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컨소시엄과 누리미디어 등의 상용DB업체의 공동구매 구독료 협상이 결렬되어 재협상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대학별로 상용DB업체와 구독계약을 맺었다. 2016년에는 서울대, 경희대, 부산대 등이 누리미디어가 제공하는 400여 종의 학술지 구독을 중단하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지만 제공하는 학술지 수가 적은 서비스로 누리미디어와 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국립중앙도서관은 누리미디어와 계약 자체를 종료했다. 

2019년 2월 제주대학교와 디비피아의 협상이 구독료 인상으로 결렬됐다.

 

그런데 실은 학술논문 유료 구독이라는 문제로 대학과 상용DB업체 사이의 계약이 난항을 겪은 것은 이미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1993년 웹브라우저가 사용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0년대 후반 이미 국내 학술지 웹DB가 상업화되어 대학도서관에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 채 10년밖에 되지 않은 2008년에 이미 자료구입비가 적은 도서관부터 웹 기반의 학술정보서비스를 구독하지 못하게 됐다. 상용DB업체가 초기 판촉을 위해 중소규모 대학 도서관에 염가나 무료로 논문을 공급하다가 논문 DB가 필요한 자원이 되는 시점에 구독료를 올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상용DB업체와 저작권신탁기관인 한국복사전송권관리센터 사이의 저작권 분쟁조정 신청 및 고소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쟁을 겪으면서 상용DB업체는 각 학회들이 출판하는 학술지 투고논문의 개별저자에게 저작권이양동의서를 받아둘 것을 권고하게 된다. 그 결과 2010년 중반 이후에는 저작권이양동의서를 사용하는 학회지가 급속히 증가하게 된다. 물론 이는 논문의 유통, 매매를 통해 수익을 얻는 상용DB업체의 요청과 그에 대한 학회의 무비판적 수용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실은 저작권이양동의서는 상용DB업체의 의도에 따라 연구자로 하여금 자신의 논문이 학술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이 되도록 동의를 강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작권을 이양하면 논문 저자조차 학문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논문을 다른 연구자에게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식으로 논문의 자유로운 공유를 막음으로써 상용DB업체의 수익이 창출된다. 

중요한 것은 학술논문과 같은 지식은 기존의 연구에 기반하여 공동작업과 같은 사회적 협동을 통해 생산된다는 점이다. 지식 생산에 대한 학문공동체의 기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동료평가의 본령 또한 지식의 공동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논문은 전통적인 경제적 합리성이 적용되지 않는 자원이기도 하다. 논문의 이용은 경합적이지도 않으며 배제적이지도 않다. 누군가가 논문을 이용하더라도 논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용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논문의 이용은 새로운 연구의 바탕이 되어 지식의 또 다른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나아가 논문은 인간과 사회, 예술과 자연 등에 대한 연구의 결과로서, 인간과 사회의 건강한 유지, 성장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공공성을 가진다. 

출판과 동시에 논문을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오픈액세스 출판은 저작권이용동의서를 통해 논문을 사실상 상품화하는 상용DB업체에 맞서 자유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하고 공공성을 가지는 지식의 성장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실은 이미 많은 학회들이 각 학회 홈페이지뿐 아니라 한국연구재단의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국가과학기술정보센터(NDSL)에서 논문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논문 공개는 오픈액세스 출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픈액세스 출판은 각 학회가 이미 일정부분 시행하고 있는 오픈액세스를 보다 더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학계에서 학술지 오픈액세스 출판 운동은 2018년 4월에 있었던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단체의 오픈액세스 출판 선언”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문헌정보학 분야 학술단체의 하나인 한국기록관리학회는 상용DB업체와의 학술논문 유료서비스 계약을 해지하고 KISTI의 NDSL을 통해 창간호부터 최신호에 이르는 학술지 전체 논문의 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금년에 있었던 국공립대학도서관협의회와 누리미디어의 구독료 협상 결렬을 배경으로 하여 ‘민주평등 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 ‘시민과 함께 하는 연구자의 집’, ‘인문학협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의 진보적 학술단체들이 문헌정보학 분야 학회들과 함께 현재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와 연구자 연대’(지식공유연대)를 구성하여 오픈액세스 출판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오픈액세스 출판은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우선적으로 논문을 자유롭게 이용할 뿐 아니라 논문을 더 많이 더 쉽게 이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친숙하고 안정적인 학술지 출판, 공유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 플랫폼에 학술지 논문이 지속적으로 저장, 축적될 뿐 아니라 학술지 출판, 논문 편집, 플랫폼 운영 등에 드는 비용의 문제가 해결될 때 오픈액세스 출판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오픈액세스 출판을 할 경우 상용DB업체로부터 받아왔던 저작권료 수입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비용 문제만 생각하더라도 개별 학회 차원에서 오픈액세스 출판 전환에 성공하는 것은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기록관리학회의 경우 출판비용을 줄이기 위해 단체회원이나 자비 부담한 개인회원에게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고 인쇄본 출판을 중단했다. 그리고 심사자들에게 심사료를 연회비와 출판비로 전환하도록 요청했고 대부분의 심사자가 이 요청을 수용하여 출판비용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기록관리학회의 사례를 다른 학회들에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학술지 오픈액세스 출판에 대한 결정은 어디까지나 개별 학회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식공유연대와 같이 학회들이 모여서 학술지의 안정적인 출판, 공유를 위한 플랫폼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공동 편집인사무실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오픈액세스 출판 전환에 성공하기 위해 출판비용을 줄이는 등의 공동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공공성을 가지는 학적 지식의 확대, 성장을 위해 공적 성격을 가지는 연구비지원기관, 학술연구도서관이 학술지 오픈액세스 출판 전환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픈액세스 출판이 필요하다는 점을 연구비지원기관과 대학도서관 등의 공공영역에 납득시키고 실질적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오픈액세스 출판은 개별 학회가 아닌 학회들의 연합체의 과제가 될 때 훨씬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 

스프링거, 엘스비어, 톰슨 로이터 등의 거대 출판사가 학술지 시장을 장악함에 따라 구독료가 상승하는 등의 문제가 노정된 후 2002년 2월에 이루어진 부다페스트 오픈액세스 선언이 해외에서의 오픈액세스 출판 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면, 한국 학계의 오픈액세스 출판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논문을 생산하지는 않은 채 유통시킴으로써, 아니 실은 자유로운 공유를 막음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상용DB업체의 문제가 노정된 지 이미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 이제 막 시작된 국내의 오픈액세스 출판 운동의 성패는 아마도 지식공유연대와 같은 학회들의 연합체에 뜻을 같이 하는 학회들, 연구자들이 얼마나 결집하는지 그리고 오픈액세스 출판 전환을 위해 얼마나 공동으로 모색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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