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주면 재미없을 것 같아 줬습니다.…나는 시류에 따라 삽니다.” 1988년 11월에 개최된 일해재단 청문회장이 웅성거렸다. 마지막 증인인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권의 강제모금을 너무 쉽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은 정경유착으로 초점을 바꾸었다. “시류에 순응한다는 것은 힘 있는 사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간다는, 그러한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증인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혹시 그 순응이 부정한 것이라도 따라가는 것도 포함합니까?”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시류의 사전적 의미는 “그 시대의 풍조나 경향”으로, 대개는 “원칙에 따르지 않고, 시류에 편승하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렇게 순응하는 것이, 힘이 있을 때는 권력에 붙고 없을 때에는 권력과 멀리하는 것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가치관의 오도를 가져오게 하고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고 보지 않겠습니까?” 시류에 순응한 것이 사실상 범죄행위에 조력한 것이라는 노의원의 추궁은 “우리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증인의 대답을 끌어냈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났고, 다시 한 번 일어난 국민에 의한 민주화운동이 결실을 거두었다. 그래서 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서 시류에 편승하던 여러 관행들이 적폐라는 이름으로 청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교육정책당국의 재정지원사업 재구조화이다. 교육정책당국은 특수재정지    원을 줄여 일반재정지원을 확대하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정책당국이 어떤 식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해왔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잘못을 알면서도 그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공자의 말대로라면, 이제는 대학이 대답할 차례다. 삼십년 전 정경유착이라는 시류에 편승했던 경제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대학이 “우리는 그러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용기를 내어야 한다. 각종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교육정책당국에 맞서지 못했던 일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교육재정이 확보될 수 있도록 교육정책당국과 정치권에 적극적으로 요구하면서, 학내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성취해나가야 한다.

우리 대학에도 상당한 규모의 일반재정지원사업이 유치되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누적된 재정위기를 해소할 수준이 못된다. 뿐만 아니라, 재정지원규모가 평가와 연동되기 때문에 대학은 정책당국에서 제시한 핵심중점과제 및 사업비집행지침을 벗어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단과대학과 학과 및 전공에서는 대학의 자율권을 보장한다는 변화를 실감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대학본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