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시론

노대원
국어교육과 교수

사범대학 교수로 예비교사들을 가르치면서 교육에 대한 생각이 점점 달라져 왔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교육을 위로부터 아래로의 전달이자 과거로부터 미래로의 전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先生)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먼저 살아보고, 먼저 배우고, 먼저 겪어보고, 먼저 생각해본 자가 아직 덜 살아보고, 덜 배우고, 덜 겪어보고, 덜 생각해본 자에게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는 것으로 교육을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그것이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에 대한 상식적인 관념입니다. 게다가 다른 단과대학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분위기가 강한 사범대학에 있다 보면 그런 통념이 더욱 강화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교육자를 향한 존경의 태도는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자에게 품위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선비나 나이든 어르신에 대한 우리의 긍정적인 관념과 이미지에 가까운 것이겠지요. 교사를 길러내는 사범대에서는 알게 모르게 그런 생각에 젖어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교육에 대한 생각과 요구도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알 듯이, 오늘날의 사회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창의성과 현실적인 응용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거의 교육적 가치관과 다른 점은 관념적 이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급박한 요구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요컨대, 변하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위태롭다는 진단입니다. 

물론, 교육은 생존을 위한 도구적 기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점에서 어찌 보면 지금 우리가 강조하는 교육의 지향점 역시 비판 받을 점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이고 현실에 기반한 교육에 대한 강조는 과거 우리가 고집해왔던 지식 전달 위주의 억압적인 교육 방식의 한계 때문에라도 계속 지지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미래 세대를 위해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더욱이 사범대에서 예비교사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로서는, 더욱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말 그대로 오지 않은 세상이고, 그 세상에서 필요한 지식과 지혜가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지의 앞날을 두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불변하는 지식이 불가능해진 만큼, 유연성과 적응력 그 자체를 길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새삼 놀라운 점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학생들이야말로 앞선 모든 세대보다도 가장 유연하고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젊은 세대들은 지난 모든 세대들보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이 성장의 시대를 지나 축소와 역성장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고, 위기를 강조하는 진지한 진단에도 역시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젊은 세대는 기존 세대와 다른 풍요롭고 선진적인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디지털 원어민(digital native)이라는 말처럼 젊은 세대들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태어나 자라왔습니다.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인 기성 세대가 디지털 환경에 얼마나 잘, 그리고 빨리 적응하고 있는지를 서로 뽐내며 자랑하고 있을 때, 이 젊은이들은 디지털 환경을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않으며 살아갈 뿐입니다. 하루하루 새롭게 등장하는 디지털 기기와 매체도 새로운 게임을 익히는 것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들입니다. 

디지털 전환뿐 아니라 문화적 감수성에서도 훨씬 열려 있는 세대가 그들입니다. 젠더 감수성이나 문화적 개방성 역시 많은 젊은 학생들은 기본으로 ‘탑재’하고 있습니다. 

다원주의적 사회의 새로운 가치들에 대한 교육이 더욱 필요한 대상은 어쩌면 우리 학생들이 아니라 교강사들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세대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누군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친다는 교육의 개념은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미래로부터, 젊은 세대로부터 거꾸로 배운다는 생각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열린 세대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자기 목소리를 내보고 자기 생각을 세상에 펼쳐보도록 연습하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학교가 되어야겠지요.

우리가 과거가 아닌 미래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요? 만약, 타임머신이 있다면 시급하게 우리보다 나은 존재인 미래의 인간들을 학교로 데려와 그들에게 배워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미래의 신인류와 학교에서 함께 지내고 있군요. 네,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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