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 중 하나이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과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친모이므로,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누이인 셈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서거 이후, 그의 아들들은 테베의 왕위를 놓고 겨룬다. 폴리네이케스는 아르고스의 원조를 얻어 양위를 거부하는 동생 에테오클래스를 공격한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모두 전사한다. 

테베의 왕위에는 오이디푸스의 처남이자 외숙인 크레온이 오른다. 왕이 된 크레온은 적국을 끌어들여 전쟁을 일으킨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는 법령을 선포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폴리네이케스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이 법령을 어기고 자신의 오빠를 매장한다. 안티고네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라고 주장한다.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하이몬은 안티고네를 감싸려 하지만,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어두운 땅굴에 유폐한다. 그 굴에서 안티고네는 목을 매어 죽고, 하이몬도 따라 죽는다. 예언자 티레시어스가 이 비극을 막기 위해 크레온에게 신의 뜻을 전하지만, 크레온이 자신의 결정을 번복한 것은 비극이 벌어지고 난 뒤이다. 

이 비극의 주요한 갈등은 안티고네와 크레온 사이에서 발생한다. 크레온은 법의 위의(威儀)를 세우고자 하지만, 안티고네는 국가의 법은 신의 법보다 못하다고 주장한다. 크레온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의 법은 유한한 것이지만, 신이 정한 법, 친족에 대한 의무는 무한하다는 것이다. 헤겔은 안티고네가 말하는 신들이 하데스보다 지위가 낮은 신들로서 “자유롭고 자의식적인 민족의 삶과 국가의 삶을 다스리는 대낮의 밝은 신들은 아니다.”고 지적한다(『미학 강의』). 

그러나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이 ‘인륜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것을 떠올려야 한다. 헤겔이 지향한 인륜적인 공동체에는 크레온의 것뿐 아니라 안티고네의 것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안티고네의 죽음 충동에 주목한다. 안티고네는 자신이 국법에 따라 죽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한다. 그럼에도 안티고네는 죽은 오빠를 매장하고, 크레온에게 반기를 든다. 안티고네는 언어로 이루어진 법의 세계, 이른바 상징계에 출현한다. 

안티고네가 원하는 것은 상징계에는 없는 어떤 것, 바로 죽음이다. 안티고네는 ‘상징계의 문지방’에 있다. 안티고네는 인간의 언어로는 쓸 수 없는 법, 신들의 법 안에 자신을 ‘난공불락의 존재’로 설정하고자 한다. 안티고네는 상징적인 세계에서는 지탱할 수 없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행동한다(『세미나』2). 폴리네이케스를 향한 안티고네의 마음은 상징계에 기입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마침내 안티고네는 죽음 충동에 몸을 맡긴 채 상징계 저편으로 향한다. 

주지하듯이 주디스 버틀러는 이 비극을 신중하게 점검한다. 버틀러는 페미니즘적인 맥락에서 헤겔과 라캉의 해석을 대체하고자 한다.

버틀러는 안티고네의 목소리가 여성적이라기보다는 남성적이라는 데까지 논의를 끌고 간다. 버틀러는 안티고네의 운명에서 “그녀가 서 있는 그 경계, 어떤 입지도 어떤 해석도 불가능한 그 경계가 바로 자신의 수치스런 미래인 것처럼, 의식적이고 공적인 분야에서 귀신처럼 떠도는 대안적인 합법성, 바로 그것의 흔적”(『안티고네의 주장』)을 읽어낸다. 국가의 지고한 법이 갖추어야 할,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 법이 결여하고 있는 “대안적인 합법성”에 대해 안티고네가 문제 제기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은 현대 소설에 비하면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은 곱씹기에 더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 

‘영웅적인 상태’에 놓인 비극적 인물들의 행동은 현대인이 넘겨다볼 수 없는 맹점을 항상 포함한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아직 우리 앞에 도래하지 않은 이상적인 국가, 지금은 부재하는 정의(正義)를 사유할 때, 안티고네의 매달린 주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출발점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

안티고네(홍문각)소포클레스 지음


 장인수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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