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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3년간 최후의 혈전 벌인 삼별초
  • 좌동철 제주일보 기자
  • 승인 2020.11.18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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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항파두리 항몽유적지에 있는 역사기록화 중 여ㆍ몽연합군에 맞서 싸우는 삼별초 군사들의 모습.

삼별초(別抄)란 ‘임시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이다. 고려 무신정권의 특수부대였던 삼별초는 좌별초ㆍ우별초ㆍ신의군으로 편성됐다.

1270년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원나라(몽골)에 굴복해 강화(講和)를 맺은 고려 왕조에 반기를 든 배중손 장군이 이끄는 삼별초는 대몽 항전을 결의하고 진도에 새 정부를 세웠다.

삼별초는 진도에 정착한 3개월 후인 1270년 11월 별동대장 이문경과 선발부대를 제주에 보냈다. 선발대는 한림 명월포(옹포리)에 상륙했다.

삼별초는 제주성을 우회해 동제원(東濟院ㆍ화북1동 거로마을) 일대에 진을 쳤다.
이문경 부대는 송담천(松淡川ㆍ화북 별도천)전투에서 관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환해장성 축성을 주도한 고여림 장군과 영암부사 김수가 전사했고, 관군 1000여 명이 전멸했다.

그런데 삼별초는 진도의 용장성을 근거지로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배중손 장군은 전사했다. 1271년 5월 김통정 장군은 잔여 부대를 이끌고 제주로 후퇴했다.

김통정의 지휘 아래 삼별초는 대몽 항쟁을 이어가기 위해 항파두리성과 환해장성을 쌓는 등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1273년(원종 14) 2월 여ㆍ몽 연합군은 병선 160척, 육군ㆍ수군 약 1만명을 동원, 제주에 상륙했다.
대대적인 협공을 받은 삼별초는 전세가 기울었다. 김통정 장군은 자결했고, 살아남은 1000여 명은 포로가 됐다. 삼별초가 제주에서 벌인 최후의 항쟁은 3년 만에 막을 내렸다.

삼별초를 진압한 원나라는 직할 통치기구인 탐라총관부와 군마를 길러 낼 목마장을 제주에 설치했다. 이를 관리했던 몽골인 목호(牧胡)들은 이후 100년간 제주의 지배세력이 됐다.
 

좌동철 제주일보 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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